옷을 사거나 입을때 항상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 이걸 이렇게 하면 촌스러워 보일까 세련돼 보일까.
패션 센스가 있는 사람에게는 두가지가 완전히 서로 다른 것이겠지만, 나같이 패션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동일한 현상의 동전의 양면과 같다, 어디가 헤드고 어디가 테일인지 구분이 안되는. 그래서 많은 경우에 그냥 무난함을 추구하는 편이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있었던것 같고, 한국에서도 본것같고 미국에서도 본것 같은 스타일로 옷을 사면 항상 언제나 무난하게 입을 수가 있으니까. 그런데 그런식으로 옷을 사 입으면 뭔가 힘없고 무채색의 존재감 없는, 아니 존재감이 너무 없어서 오히려 그 빈공간이 더 잘 느껴지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 같다. 내가 성격이라도 나만의 색깔을 가졌다면, 옷에서 주는 분위기 정도야 무시하고 살 수도 있을텐데, 성격도 그다지 눈에 띄는 편이 아니다 보니 이래저래 문제가 좀 되는것 같다.
그래서 옷으로라도 나를 좀 표현해 볼까 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려 봤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촌스러운것과 세련된것은 어떤 항구적인 무엇이기 보다는 그때그때 사람들의 인식에 좌우되는 것이라서, '바로 이것이다'라고 쉽게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그때 그때마다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변화하는지 계속 반발자국 앞서서 따라(?)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70년대 80년대 영화에 멋있다고 나오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촌스럽다고 생각하고, 2007년의 패션쇼들을 보면서 익숙해지지 않은 새로움에 세련됨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법칙은 꼭 패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 사조, 사회 이슈들에도 그대로 적용 되는것 같다. 그때그때 이슈가 되는 주제들이 있었다. 패션계에 있는 유명 디자이너 처럼, 이쪽에도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있어서 개념을 새로이 만들어낸다거나, 다른 곳에서 유행하는 방식을 접목해서 새로운 조합을 끌어 낸다던가, 아니면 기존의 널리 퍼진 관념의 헛점을 캐내어 완전히 반박을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때 그때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 낸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처음엔 '우와~' 하며 혹하게 되는데 몇년쯤 지나서 비슷한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되면 '그게 뭘' 이라는 시큰둥한 반응이 나오게 된다. 심한 경우엔 '그말에 아직도 속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정도까지 가게 되는데, 세련됨이 완전히 촌스러움으로 뒤바뀌어 버린 경우다.
이것과 비슷한 현상이 시대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나이나 학문적 성취에 따라서도 발생하는 것 같다. 이를 테면 내경우 어렸을 때 처음 진화론을 접하고선 엄청난 감동을 받았었고, 조금 자란 후에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나서도 한동안 흥분에 휩싸인 적이 있었었다. 그런데 만약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그 책을 지금 접하고 나에게 그 이야기를 꺼낸다면, 아무래도 이전과 같은 흥분 속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는 힘들것 같다. 그런데 '이기적 유전자'도 아니고 진화론을 들고와서 사회진화론과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면 어릴적 나라면 모를까 지금의 나는 '촌스럽게' 바라 보게 될것 같다.
지금 이글도 예외가 아니라서, 미학을 못배운 나로서는 최대한 머리 굴려가며 생각해낸 이야기인데, 사실 알고보면 미학 개론 어느 구석탱이에선가 가볍게 다루고 넘어가는 다들 아는 내용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미 틀렸다고 검증된 이야기거나. 그래서 내 개똥 철학을, 블로그에 열심히 적는 것이 솔직히 부담이 좀 된다. 이미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생각해본 사람이 보기에 얼마나 가소로울까 하고. 특히나 요즘 새로운 글쓰기 시도라면서 분위기 잡고 글쓰는건, 내 딴엔 그럭저럭 잘한거 같은 느낌이 들더라도, 다른 사람한테는 유치짬뽕 스타일이 되기가 딱 좋은데....블로그에 오는 사람 별로 없다는 이유 하나로 그냥 저지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모든 패션이 세련되었다가 촌스러움으로 바뀌는건 아니어서, 시대를 건너서 약간의 마이너 체인지로 계속 세련됨을 유지하는 스타일이 있기도 하고, 오래전 음악이지만 편곡과 조금씩 다른 연주 방법을 통해서 계속 연주되는 음악이 있고, 옛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오래전 영화라는 느낌을 안주는 명화들이 있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그냥 삶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경험이나 생각들 역시, 시간과 사람을 초월하여, 어느때 누구에게 이야기 되어져도 진부하지 않고 공감을 주는 말과 글들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내 블로그에도 그런 글들이 되도록 많이 실려서 나중에 10년이고 20년이고 후에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여줄 때, 너무 유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