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생각'에 해당되는 글 129건

  1. 오류 2009.07.07
  2. 왜곡 2009.07.07
  3. 취향 2009.07.07
  4. 낚는 자와 낚이는 자 2009.07.07
  5. 연애론 2009.07.07
  6. 기대 2009.07.07
  7. 발자국 2009.07.07
  8. 초심 2009.07.07
  9. 언어 2009.07.07
  10. 장마 2009.07.07
  11. 2009.07.07
  12. 애정 2009.07.07
  13. 문인과 영웅 2009.07.07
  14. 아픔 2009.07.07
  15. 표현 2009.07.07
  16. 경험 2009.07.07
  17. 스템플러 2009.07.07
  18. 선율 2009.07.07
  19. 맞춤법 2009.07.07
  20. 원형의 변주곡 2009.07.07
  21. 칭찬 2009.07.07
  22. 자기 합리화 2009.07.07
  23. 욕망 2009.07.07
  24. 우체국 2009.07.07
  25. 셧다운데이 2009.07.07
  26. 촌스러움과 세련됨 2009.07.07
  27. 추운날 2009.07.07
  28. 2007년 2009.07.07
  29. 주모자가 없는 시대 2009.07.07
  30. 고백의 종류 2009.07.07

오류

from 시작/생각 2009. 7. 7. 23:10 by 케르베로스
스스로에게 의문을 가져보아도
그 대답을 찾아내지 못할 때가 있다.

내가 행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랬는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할 때가 있다.

분명 알면서도 몰랐던 것처럼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할 때가 있다.

생각만 가득하고 실천은 하지 못할 때가 있다.

,

왜곡

from 시작/생각 2009. 7. 7. 23:09 by 케르베로스
완전한 의미에서 피해자가 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두명 이상의 화자는 두개 이상의 발화를 하기 때문이다.

저 사건을 사실이라 한다면 발화는 해석이나 입장 정도로 볼 수 있다.
객관성에 가까울수록 자신의 이익이 높아지거나 혹은 신뢰성을 획득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주관적인 웅변, 혹은 사건 자체를 왜곡함으로써 극적인 효과를 거두거나
자신의 자리를 더 확고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

취향

from 시작/생각 2009. 7. 7. 23:08 by 케르베로스
취향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신문, 잡지, 텔레비전 같은 대중 매체에 의해서
선택하게 만들어져 있고

나는 그것을 내가 찾아냈다고 믿는 것이라는데,
실제로 나는 공장에서 수도 없이 찍어내는
같은 크기와 같은 가격의 공산품을 사고도
마치 이것은 나를 위해 태어난 물건인 것처럼
만족스럽게 생각할 때가 있다.

또한 그 자체로는 아무 욕망도 지니지 않은 물건 자체에
로망을 부여하여 어떤 대단한 것이라거나
내 꿈 그 자체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

낚는 자와 낚이는 자

from 시작/생각 2009. 7. 7. 23:08 by 케르베로스
태초에 인간이 생기고 그 종류는 둘로 나누어졌으니,
그것은 낚는 자와 낚이는 자이다.

아담과 이브 둘 중에 누가 어느 쪽인지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아무튼 분명 하나는 낚고 하나는 낚인 것이리라.

세일 전단지에 낚여서 백화점에 갔더니
일부 품목 제외라는 작디 작은 글자가 나를 분노하게 하고,

하반신 누드에 빨간 티셔츠만 입은 야한 사진이래서 눌렀더니
곰돌이 푸가 웃으며 나타나기도 한다.

길 걷다가 옷깃만 스쳐도 멱살을 잡고 싶은 날씨인데
내가 이렇게 생선 취급을 받아야겠냐.

,

연애론

from 시작/생각 2009. 7. 7. 23:07 by 케르베로스
연애란 일반적인 인간 관계에서 약간 다른 구석이 있다.

우선은 사람이 연애에 쏟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연인과 이어지는 시간은
생활에서 아주 작은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생활 전반을 지배해버리는 무서운 정복자라는 것이다.
그 밖에도 지속적인 관심과 연락을 필요로 하고,
서로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그것이 동성이든 이성이든 간섭할 수 있으며,
준만큼 받는다는 보장이 없고,
오히려 주는 사람이 더 상처받는 경우가 많으며,
아무리 좋다고 부비고 지내다가도 끝나는 순간에 따라서
모두 추억으로 결정되어 버리는 것도 있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아무리 십년을 죽고 못 살아서 만나다가도
하루만에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원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것은 상대방이 나 아닌 다른 이성이 생겨서 헤어질 때,
나와 헤어지기 전에 이미 만나고 있었을 때,
그 이성에게 투자를 더 많이 했을 때 더욱 깊어진다.

어차피 연인이란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생활 반경이 겹치지 않는 이상 헤어지고 다시 만나지 않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추억이 많은 사람이 부자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헤어졌다고 해도 그걸 분쇄기에 넣어서 산산히 조각을 낸 후에
다시는 찾을 수 없는 매립지로 보낼 필요는 없다.

헤어짐도 연애에 포함되니 말이다.
일단 잘 헤어졌다고 하는 것에는 두가지가 있다고 본다.
전자는 '그 쓰레기, 잘 헤어졌어!'이고 후자는 '괜찮아. 잘 헤어졌어.'이다.
전자야말로 사실 잘 헤어질 필요가 있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연애는 사업과 비슷하다.
경험이 없는 무리한 투자는 화를 자초하며,
사업 기대치를 현실성 있게 낮추는 것이 좋다.
마진이 50%를 넘는다는 등의 허황된 기대는 버려야하고
고객의 의식 구조를 이해해야 하는 것도 종요하다.
충분한 준비 과정을 거친 후에 시작하는 것이 좋고,
막연한 기대로 사업 포기 시점을 놓치지 말아야한다.

나는 이 사업 포기 시점을 놓친 적이 몇번 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것 때문에 전체에서 본전을 찾지도 못하고
처절하게 도산하였음을 깨달았다.

일단 상대와 정말로 끝내고 싶지 않다면 해보는 것은 다 해보는 것이 좋지만,
이렇게해서까지 상대의 곁에 있는 것은 어떤 미래를 가져다주나 생각도 해봐야한다.
개인적으로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나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데,
대부분 그들은 헤어진 원인에 대하여 고치지 않는다.
떨어져있다가 점차 시간은 흐르고 미움은 걷혀가고
애틋함이 쌓이다가 그런 기분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렇기에 또 비슷한 문제를 두고 싸우다가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헤어지는 것도 사람에 대한 예의이니
최대한 상처를 주지 않도록 배려하자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생기지 않은 상태에서,
만약에 생겼다면 눈치채지 않도록,
눈치채지 않도록 한다면 앞으로도 들키지 않게,
상대방이 약간은 예상할 수 있는 범위에,
상대방의 상태가 너무 나쁘지 않은 시기에 하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말하지만 나도 막상 이별이 다가오면
너무 괴롭지 않도록 단칼에 잘라달라고 속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

기대

from 시작/생각 2009. 7. 7. 23:05 by 케르베로스
연애의 적은 여러 가지가 있다.

생활의 고단함, 다른 이성, 불확실한 미래,
주변의 반대, 야망, 다른 가치관, 과거의 연애, 서로 다른 스킨쉽 허용 범위,
그 밖에 많은 것들 중에서 의외로 기대라는 것이 들어있다.

기대라, 기대가 왜 연애의 적이 될까.
남자가 여자를 몇번 대문까지 데려다주기 시작하면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굳어져간다.
그리고 그러리라 기대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하지 않았을 경우에 서운하게 생각하고
심지어 애정을 의심하게 된다.

때로 사랑은 사소한 것으로도 흔들리는 연약한 감정이다.
정말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여 전체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어버리는 때가 있다.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애정이나 신뢰라고 다들 알고 있지만,
기념일을 기억하고 있느냐 아니냐
혹은 연락의 횟수가 얼마나 되나에서 둘은 옥신각신하다가 헤어지기도 한다.
나는 여리다는 평가를 많이 듣는다.

글쎄, 내가 여린가?
아마 능력이 부족해서 나를 지키는 힘이 없을지는 몰라도
그리 여리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무디고 상처를 받지 않는 편인데,
역설적으로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에
상처를 받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몇년 전만 해도 나는 순하디 순한 짐승이어서
내가 진심으로 다가가면 그들이 응당 화답하리라 생각하며
기대를 품었고 거기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부정적 결과를 받으면
내 존재 자체를 부정 당한 것처럼 떨거나 슬퍼하거나 울었다.
세상을 원망하고 나를 상처준 사람들에게 마음 속으로
여러 번 왜 그랬냐고 외치다가, 나는 곧 깨달았다.
그들이 줘도, 나는 안 받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내가 오렌지 주스도 아닌데 백퍼센트일 필요는 없다.
진한 맛을 누구나 좋아하지는 않으니,
개인의 취향이고 그냥 그럴 수도 있는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것까지 발목을 잡히기에 우리의 인생은 피곤한 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웬만한 것은 그럴 수 있지하고 넘기고 싶다.

물론 내 기준에서는 웬만하지 않은데 남에게는 웬만한 것도 있지만,
상대방의 행동 하나, 몸짓 하나 해석하다간
삶의 피로라는 녀석이 내 목을 꺾어버릴 것이다.

윤동주도 아닌데 스치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사람은 관계를 망치게 된다.
그리하여 당신도 나도 무디게 살 필요가 있다.

,

발자국

from 시작/생각 2009. 7. 7. 23:03 by 케르베로스
밤에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밤이어야 되는 일이 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글이 그렇다.
낮에는 머리가 차가워서 글이 빨리 써지긴 한다.
그런데 가슴이 얼어서 무슨 생각을 풀어낼래도 억지 춘향이다.

밤에는 직감으로 가슴이 시키는 삼라만상이 스친다.
근데 머리가 굼떠서 그거 잡느라 뛰다가 날이 샌다.
써도 내용이 통일되지 않고 삼천포로 간다.

나는 불을 끈 어두운 방의 침대에서 생각을 하다가,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써야지한다.

하지만 잠으로 빠져들면서 망각의 강을 건넌다.
아침이 되면 발자국조차 없다.

,

초심

from 시작/생각 2009. 7. 7. 23:02 by 케르베로스
'처음' 이라는 단어는
훗날의 일들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경험이다.

바꿔 말하면 초심인데,
어떤 상황이든간에 초심을 흔들려하거나
잃지 않고 한결같기는 참 힘든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초심을,
처음의 소중한 경험들을 토대로
잘 성장하고 있기는 한것일까?

어쩐지 초,중학교 도덕책같은데서 들어본 대사 같다.
나도 이런말 하려니 좀 어색하다.

사실 첫단추가 중요하다는걸
누구나 잘 알고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처럼 탄탄한 밑받침을 만들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인것 같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 잘하는 사람
없다는 말도 있는듯 하고.

그러니까 말이고 이론이면 다가 아니라,
요지는 나는 과연 그렇게 지내고 있느냐 라는건데.
사실 별로 그렇지를 못하고 있는것 같다.

그저 많아진건 틈만나면
넘쳐 새어나올것 같은 잡념과 공상들 뿐이다.
생각이 많다고 해서 다 어른스러운건 아닐텐데...

,

언어

from 시작/생각 2009. 7. 7. 23:01 by 케르베로스
언어는 곧 사람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나부터가 활자로 그럴싸한 소리를 하지만,
실제로는 생각 적고 말 가볍게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어가 그 사람의 인격이나 사고와 따로 노는 것은 아니다.
예로부터 조상들이 풍채, 언변, 문필, 판단력을 보고 사람을 판단한 것처럼,

어느 정도는 사람의 내면을 짐작해볼 수 있다.

,

장마

from 시작/생각 2009. 7. 7. 23:01 by 케르베로스
장마가 시작되었다.

직사광선으로 알람 시계를 대신할 수 있을 정도였는데,
이제는 비 내리는 소리가 자장가 되어 잠이 늘었다.

잠깐 비가 그친 거리를 걸었더니,
비가 갠 후의 공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떠올랐다.

기억이라는 것은 사랑스러운 동시에 귀찮은 것이다.

,

from 시작/생각 2009. 7. 7. 23:00 by 케르베로스
꿈은 나의 이야기도 아니고,
나의 이야기가 아닌 것도 아니다.

살면서 자는 것에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그래서 침대는 좋은 것으로 사야한다는 사람은 많지만,

꿈을 삶의 한 부분이라고
깊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예전에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꿈에 대해서 기록한 적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꿈은 기억나지 않거나,
기억난다고 하더라도 서술하기 우습게
황당무계한 내용이 많아서
 
나는 더 써나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

애정

from 시작/생각 2009. 7. 7. 22:59 by 케르베로스
연애에서 언제나 손해만 본다고
생각하는 여자와 남자가 있었다.

지금까지 했던 사랑을 돌이켜보면 아끼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주었다고 생각했고,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는 쪽이었기에
자신이 상대방보다 훨씬 많은 애정을 가졌다고 여겼다.
 
그들은 늦은 밤에 각자의 발자국에 대해
되직한 애증을 쏟아내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하다가,
서로가 더 이타적인 사랑이었노라고 말했다.
 
갑자기 남자가 여자에게 제안했다.
그럼 우리가 사귄다면 누구의 애정이 더 커질까.
여자는 무슨 패자부활전이냐며 단박에 거절했고,
남자 또한 농담이었다고 의뭉스럽게 자신이 했던 말을 눙쳤다.

하지만 여자는 모든 것이 시시하게 느껴지는
깊은 밤이 되면 가끔 그 제안을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어쨌든 자신이 더 좋아했을거라고 말이다.
그녀는 언제나 무언가를 내어 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물론 그 기회를 아무에게나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또한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은 된다고 믿었다.
아니, 알고 있었지만 그게 편하기에
그렇게 믿어버리기로 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랬기에 그런 어설픈 희생은
오히려 상대방의 권태를 앞당겼고,
사랑은 위태로웠다. 그 애정이 정말 그를 위한 것이었나.
또한 그에게 가는 것이었나. 내 만족을 위해 사랑했고,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어떤 새벽에 나는 생각한다.
사랑이 모든 것을 덮을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사랑한다고 머리 아픈 문제가
저절로 풀리는 것은 아니라고,
그러니까 뛰어야겠다.

,

문인과 영웅

from 시작/생각 2009. 7. 7. 22:57 by 케르베로스
중국역사의 인재 활용 경전이라는 변경이란 책을 보면
중국 남방에서는 문인들이많이 배출되었고
중국 북방에서는 중국 황제들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지리적으로
남방에서는 강과 시내가 많기 때문에 부드럽고 고상한 지식을 좋아하는 문인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북방에서는 산이 많아서 산의 중후하고 강한 이미지가 용감하고 호전적인 영웅들을 많이 배출하게
하여 호전적인 전쟁을 통한 황제들이 많이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문인과 영웅이라는 두 지식인의 차이는,
북방의 영웅들은 정치에 치중하는 데 비해
지자들은 문학과 예술에 경도하는 경향이 있고,
남방의 문인들은 문학과 예술에 경도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문인과 영웅은 지혜의 두 가지 유형일 뿐이며
둘 사이에 높고 낮음을 따질 수는 없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학자 서생이나 문인 들은
절대로 개국 황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학자나 문인들이 배우는 성현의 도는 치국을 위한 것이지 결코 개국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성현의 도는 수신과 양육의 이치를 가르치지 반역의 원리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2.학자나 문인들이 대표하는 이상적 도덕은 항상 사회 현실에 집착하여 개탄하고 호소하고 애원할 뿐 절대로 반란을 제창하거나 백골 더미 위에 새로운 궁전을 세우지 못한다.

3.학자나 문인들은 독서에 능하고 두 귀가 항상 성현의 교훈을 향해 열려 있어 사회적인 수련이 부족하기 때문에 개국 황제들에게 필요한 야심과 임기응변의 능력, 무례함과 몰염치, 잔임함등의 성격과 자질이 결핍되어 있다.

분명히 책에서 가르치는 이상과 원칙은 남방의 문인들이 훨씬 잘 알 것인데
역사를 보면 실제 명예와 부는 북방의 영웅들이 다 가져간다.
그것은 위의 문장들처럼 남방의 문인들이 책의 고상한 원칙으로부터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복잡다단하게 얽힌 사회의 ‘잔인한 현실’에 적응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본다.

많이 배웠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멋진 글을 남긴 그 사람도
분명히 책으로부터 많이 배웠고, 일도 성실하게 잘 했을 것이다.
다만 책에는 가르치지 않는 ‘잔인한 사회’ 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의 문장처럼 야심과 임기응변, 무례함과 몰염치, 잔임함등의 요소도 분명히 필요할 것인데,
그 요소를 배우기가 그 사람은 거북하다 못해 역겨웠을 것 같다.

북방의 영웅, 남방의 문인, 그 사람은 남방의 똑똑한 문인인 것 같다.
다만 똑똑한 북방의 영웅은 되지 못한 것 같다.
그렇더라도 자신의 특징과 재능을 살린 길을 찾으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에는 남방의 문인만이 잘 살수 있는 길을 찾아서
글에 담긴 자신의 이상과 역량을 마음껏 살렸으면 하는 바램이다.
,

아픔

from 시작/생각 2009. 7. 7. 22:52 by 케르베로스


결국 아프다.
,

표현

from 시작/생각 2009. 7. 7. 22:50 by 케르베로스
아무리 그럴듯하게 표현해도

나는 결국 아무것도 아닌거네, 젠장...

,

경험

from 시작/생각 2009. 7. 7. 22:48 by 케르베로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준에 따르면,
정보업체의 소개를 받은 남녀가 두 번 만나면서부터
사귀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무서워서 사람 만나겠나 싶지만
확실히 요즘 세상은 사람과 맺고
끊기가 쉬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주변에서 답답하다고 할 정도로
화를 내지 않는 편인데,
그 대신에 꽤 많이 도망간다.

싸우기 싫어서 먼저 피하고
상처받기 싫어서 잘라버리고,
심지어 상대방이 바빠서 내가 폐를
끼칠 것처럼 보이면 앞서 피해준다.

수년 간의 경험으로 나는 사람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 끔찍하게 싫어졌고,
그래서 사람에게 다가서거나
기대는 것도 최대한 피하고 있다.

,

스템플러

from 시작/생각 2009. 7. 7. 22:47 by 케르베로스
스템플러는 나에게 여러모로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이다.

집에서 쓸 일은 수 년에 걸쳐 한번 있을까 말까한데다
업무라면 회사 복사실에서 뽑고 거기 놓여진 것으로 해결하면 된다.

스템플러 심은 한 통에 5000개가 들어있다는데
아마 내가 스템플러 심을 사면 평생 쓸 것이다.
당장 필요하지 않고, 언제 필요할지 모르는데도 사놓는다는 것은
어쩌면 어리석은 행동일지 모르겠다.
,

선율

from 시작/생각 2009. 7. 7. 22:47 by 케르베로스
노래를 들을 때
선율을 중시하는 사람과
가사를 중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전자이다.

가사는 전체적인 분위기만 파악하지
세세한 부분은 거의 신경쓰지 않아서
같은 노래를 몇년 듣다가 나중에서야
'이게 그런 가사였어?'하고 놀랄 때도 많다.

노래 가사라는 것이 시와도 비슷해서
리듬을 위해 언어를 압축시키거나
생략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지 머리가 나쁜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이유이다.

,

맞춤법

from 시작/생각 2009. 7. 7. 22:46 by 케르베로스
알면서도 맞춤법을 틀리게 쓸 때가 있다.

한번은 한 번이라고 적기 싫고,
짜장면은 자장면이라고 적기 싫다.

전자는 붙여쓰는 쪽의 모양새가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후자는 나의 추억이 담긴 짜장면을 적당한 명분도 없이
바꿔버린 것에 대한 작은 반항이다.

맞춤법이라는 것이 그렇게 된 것에는
대부분 큰 이유가 없지만 말이다.

,

원형의 변주곡

from 시작/생각 2009. 7. 7. 22:45 by 케르베로스
다시는 사랑을 할 수 없을거라고
철썩같이 믿었던 밤이 있었다.
나는 사랑에 찢긴 너덜한 마음으로 울었고,
상대는 아마 아무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다음에도 사랑이라는 것을 하긴 했으나
예전과는 달랐다. 적당히 주고, 적당히 받는 것이 편했다.
고전에서 말하는 숭고한 사랑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각박한 세상에서 내 마음 뉠 자리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어설프게 가리는 것보다 대놓고 그런 자세를 보이는 것이 서로에게 편했다.

누군가는 연애란 원형의 변주곡이라던데,
그건 사람이 바뀌어도 어차피 주체가 자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고,
그럼으로써 내가 느끼는 기분이 연애다.

나는 가끔 누군가의 얼굴을 보며,
조금 더 일찍 만났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한탄하게 될 때가 있다.

,

칭찬

from 시작/생각 2009. 7. 7. 22:44 by 케르베로스
누가 뭐래도 나는 날카로운 지적보다 달콤한 칭찬이 좋다.

예전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대신 칭찬을 해줄테니,
나는 악역을 맡겠어.'라고 말했는데,
속으로 '그냥 밸이 뒤틀리면 그대로 뱉겠다고 하면 되지,
무슨 거창한 변명을?'하고 생각했다.

아무튼 나는 여전히 철딱서니가 없어서인지,
당장 나에게 달게 느껴지는 것이 좋다.
처음으로 칭찬을 받은 것이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가장 오래된 칭찬의 기억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엄마의 매서운 회초리 아래,
나는 해법 전과를 놓고 문제집을 풀어 1등을 차지했다.
담임 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하지만 엄마는 전과목 백점이 아니라고 기뻐하지 않으셨고,
나를 사랑하셨던 부모님은 많은 기대를 하셨지만,
부족했던 나는 그걸 채워주지 못했고 언제나 못난 자식으로 남게 되었다.
칭찬을 듣고 자란 적이 없다고 했더니
누군가는 '그렇게 믿고 싶으니까 기억을 떠오르지 않는거지.'라고 말했지만,
삼박 사일 밤을 새워 떠올려봐도 도무지 아니다.

게다가 떠오르라는 칭찬은 안 떠오르고,
상처만 슬그머니 수면 위에 떠서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나는 사랑에 목이 마르고,
작은 칭찬에 뒤돌아서 몰래 춤 춘다.
,

자기 합리화

from 시작/생각 2009. 7. 7. 22:43 by 케르베로스
레스토랑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오줌 누는 소년은 브뤼셀의 명물이다.
 
그 작은 소년을 보려고 인파가 몰려들고,
각국의 명사들은 옷을 선물하기도 한단다.
거기를 둘러본 사람들은 모두 명성에 비하여 너무 초라하고 실망스러웠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어쩐지 내가 유럽에 가게 된다면 거기를 지나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유명해진 이유도 납득이 가고, 실망한 이유가 납득이 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의 입은 타인의 마음을 쥐었다 폈다 주무른다.
가끔은 와전된 정보로 평생 그것을 옳다고 생각하고 살게 할 수도 있다니 무서운 일이다.

만리장성이 어떤 목적으로 지어졌고,
얼마에 걸쳐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다시 들어도 흥미로웠다.

근데 갑자기 '인공위성에서 눈으로 유일하게 보이는 지구의 건축물'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괴로움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폭이 좁은 곳은 겨우 이삼미터에 불과한 만리장성이 인공위성에서 보일 리가 없잖아.
지금 당장 육안으로 보아도 저 멀리는 실처럼 가느다랗게 보이는데,
길기만 길다고 보일 것 같냐.그러면 원효 대교도 인공위성에서 보이겠다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어른들과 같이 앉아있었던 나는 차마 잘난 체를 할 수 없었다.

인터넷은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다.
그리고 온갖 추측과 소문이 떠돌기도 한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도 무서운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조금 고약하더라도,
모든 것을 의심하는 버릇을 고치지 않을 것이다.

,

욕망

from 시작/생각 2009. 7. 7. 22:40 by 케르베로스
사람의 욕망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다.
크게 나누면 식욕, 성욕, 수면욕이라는데
최근에 들어서 억누를 수 없는 강한 욕구를 하나 더 발견했다.
파괴하는 욕구랄까?
흔하게는 '내가 가질 수 없으면 널 파괴하겠어.'라는 애증도 있고,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며 어리석은 행동을 자초하기도 한다.

,

우체국

from 시작/생각 2009. 7. 7. 22:39 by 케르베로스

보내야 할 소포가 있는데

갈 시간이 없어.
 
요즘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네.

,

셧다운데이

from 시작/생각 2009. 7. 7. 22:37 by 케르베로스



나는 절대 참여 못해.
,

촌스러움과 세련됨

from 시작/생각 2009. 7. 7. 22:35 by 케르베로스
옷을 사거나 입을때 항상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 이걸 이렇게 하면 촌스러워 보일까 세련돼 보일까.

패션 센스가 있는 사람에게는 두가지가 완전히 서로 다른 것이겠지만, 나같이 패션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동일한 현상의 동전의 양면과 같다, 어디가 헤드고 어디가 테일인지 구분이 안되는. 그래서 많은 경우에 그냥 무난함을 추구하는 편이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있었던것 같고, 한국에서도 본것같고 미국에서도 본것 같은 스타일로 옷을 사면 항상 언제나 무난하게 입을 수가 있으니까. 그런데 그런식으로 옷을 사 입으면 뭔가 힘없고 무채색의 존재감 없는, 아니 존재감이 너무 없어서 오히려 그 빈공간이 더 잘 느껴지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 같다. 내가 성격이라도 나만의 색깔을 가졌다면, 옷에서 주는 분위기 정도야 무시하고 살 수도 있을텐데, 성격도 그다지 눈에 띄는 편이 아니다 보니 이래저래 문제가 좀 되는것 같다.

그래서 옷으로라도 나를 좀 표현해 볼까 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려 봤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촌스러운것과 세련된것은 어떤 항구적인 무엇이기 보다는 그때그때 사람들의 인식에 좌우되는 것이라서, '바로 이것이다'라고 쉽게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그때 그때마다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변화하는지 계속 반발자국 앞서서 따라(?)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70년대 80년대 영화에 멋있다고 나오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촌스럽다고 생각하고, 2007년의 패션쇼들을 보면서 익숙해지지 않은 새로움에 세련됨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법칙은 꼭 패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 사조, 사회 이슈들에도 그대로 적용 되는것 같다. 그때그때 이슈가 되는 주제들이 있었다. 패션계에 있는 유명 디자이너 처럼, 이쪽에도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있어서 개념을 새로이 만들어낸다거나, 다른 곳에서 유행하는 방식을 접목해서 새로운 조합을 끌어 낸다던가, 아니면 기존의 널리 퍼진 관념의 헛점을 캐내어 완전히 반박을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때 그때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 낸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처음엔 '우와~' 하며 혹하게 되는데 몇년쯤 지나서 비슷한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되면 '그게 뭘' 이라는 시큰둥한 반응이 나오게 된다. 심한 경우엔 '그말에 아직도 속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정도까지 가게 되는데, 세련됨이 완전히 촌스러움으로 뒤바뀌어 버린 경우다.

이것과 비슷한 현상이 시대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나이나 학문적 성취에 따라서도 발생하는 것 같다. 이를 테면 내경우 어렸을 때 처음 진화론을 접하고선 엄청난 감동을 받았었고, 조금 자란 후에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나서도 한동안 흥분에 휩싸인 적이 있었었다. 그런데 만약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그 책을 지금 접하고 나에게 그 이야기를 꺼낸다면, 아무래도 이전과 같은 흥분 속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는 힘들것 같다. 그런데 '이기적 유전자'도 아니고 진화론을 들고와서 사회진화론과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면 어릴적 나라면 모를까 지금의 나는 '촌스럽게' 바라 보게 될것 같다.

지금 이글도 예외가 아니라서, 미학을 못배운 나로서는 최대한 머리 굴려가며 생각해낸 이야기인데, 사실 알고보면 미학 개론 어느 구석탱이에선가 가볍게 다루고 넘어가는 다들 아는 내용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미 틀렸다고 검증된 이야기거나. 그래서 내 개똥 철학을, 블로그에 열심히 적는 것이 솔직히 부담이 좀 된다. 이미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생각해본 사람이 보기에 얼마나 가소로울까 하고. 특히나 요즘 새로운 글쓰기 시도라면서 분위기 잡고 글쓰는건, 내 딴엔 그럭저럭 잘한거 같은 느낌이 들더라도, 다른 사람한테는 유치짬뽕 스타일이 되기가 딱 좋은데....블로그에 오는 사람 별로 없다는 이유 하나로 그냥 저지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모든 패션이 세련되었다가 촌스러움으로 바뀌는건 아니어서, 시대를 건너서 약간의 마이너 체인지로 계속 세련됨을 유지하는 스타일이 있기도 하고, 오래전 음악이지만 편곡과 조금씩 다른 연주 방법을 통해서 계속 연주되는 음악이 있고, 옛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오래전 영화라는 느낌을 안주는 명화들이 있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그냥 삶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경험이나 생각들 역시, 시간과 사람을 초월하여, 어느때 누구에게 이야기 되어져도 진부하지 않고 공감을 주는 말과 글들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내 블로그에도 그런 글들이 되도록 많이 실려서 나중에 10년이고 20년이고 후에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여줄 때, 너무 유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추운날

from 시작/생각 2009. 7. 7. 22:33 by 케르베로스


호주머니에 양손을 깊숙히 집어넣고
 
목을 잔뜩 움츠린 채로 차가운 바람이 부는
 
거리를 넘어질 듯 걷는다.

,

2007년

from 시작/생각 2009. 7. 7. 22:31 by 케르베로스


매년 새해가 되면 작년보다는 행복해지길 바라는데,

올해는 작년보다 더 슬픈 거 같다.

,

주모자가 없는 시대

from 시작/생각 2009. 7. 7. 22:29 by 케르베로스
설령 이 시대에 큰 문제가 있다 해도 주동자의 동상이 없고, 주모자의 깃발조차 없으니 모순과 부조리를 발견해도 대항하고 투쟁할 수가 없다.

-생각은 날마다 나를 새롭게 한다. 김형태.


모호하다. 나의 생활은 괴롭고 고통스러운데, 그렇게 만드는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도저히 알 수 없다. 나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미쳐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속시원하게 그 '악(惡)'이 정체를 드러내면 맞서 싸우기라도 할텐데, 애써 소리쳐도 눈에 보이는 것은 없다. '실체가 없음' 은 그 자체가 공포가 되어 나를 더 옥죈다.

문제는 바로 이거다. 사회에 불만을 가지고 있어도 달리 불만을 풀 곳이 없다. 악당은 누구요 악의 조직은 어디 있단 말인가? 찌질이들의 말버릇대로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를 외치며 노무현을 탓한다 해도, 노무현이 없다 해서 나의 불안이 풀릴 것 같지는 않다. 노무현 비슷한 놈이 그 자리에 앉아 다시 나를 엿먹일 거다. 노무현이 문제가 아니다. 노무현보다 더 큰 무언가가 그 뒤에 있다. 아니 있어야만 한다.

음모론은 그래서 사랑받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의 정체를 속 시원하게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리메이슨이나 오푸스 데이, NHK라면 내 불안을 믿고 떠넘기기에 적당하다. 불안의 실체가 정해지면 나는 편해진다. 실체 있는 악의 조직이 나를 괴롭힌다- 그 순간 우리는 싸울 수 있다.

사실 음모론 따위는 따지고 보면 말도 안되지만,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고통스러울 뿐이다. 아무 것도 분명한 게 없으니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하고 누구를 맘 편히 비난할 수도 없다. 실체가 없으니 억지로라도 실체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만이 주모자가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이다. 보이지 않는 악은 무섭다.

,

고백의 종류

from 시작/생각 2009. 7. 7. 22:28 by 케르베로스
고백이란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고ː백(告白)[명사][하다형자동사·하다형타동사] 마음 속에숨기고 있던 것을 털어놓음
- 네이버 사전검색이다.

우 리는 일반적으로 '사랑고백을 했어'라고 말을 쓰고 있지만 이 말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 가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사귀지 않을래요?"라고 말하는 연애시작용 고백이 있고 또 다른 한 가지는 "당신을 좋아해요"라는 말하는 사실폭로용 고백이 있다.

일반적인 경우야 이 사실폭로용 고백과 연애시작용 고백이 중복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 두 가지를 크게 구분하여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특별한 경우에 이 중에 한가지의 고백만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연애시작용 고백만 하게 되는 경우는
- 상대방이 내가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을 때
- 소개팅으로 만난 상대가 마음에 들어서 정식으로 시작할 때

사실폭로용 고백만 하는 경우는
-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는데 좋아졌을 경우
- 사귀기 어렵거나 사귈 수 없는 상대이지만 마음을 알리고 싶은 경우
- 얼굴만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작업 하겠다고 선전포고할 때를 들 수 있다.

오늘의 주안점은 역시 사실폭로용 고백!

이 사실폭로용 고백이라는 게 술술 풀리는 시나리오가 전개되어
- "네가 좋아"
- "응 나도 널 좋아하고 있었어."
- 포옹 후 키스 돌입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 "네가 좋아"
- "……."
- "……."
- 침묵.. 침묵.. 침묵...
의 상황으로 진행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게 바로 사실폭로용 고백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저 사실폭로용 고백을 선택하게 되는 것일까? 그건 당연히 연애시작용 고백의 경우
- "나랑 사귀자"
- "응"

이라는 대답이 나올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은

- "엣? 난 아직 너랑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는걸?"
- "아직 우린 서로 잘 모르잖아."
-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미안~"
과 같은 대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즉, 사실폭로용 고백을 하는 이유는 [나는 널 잘 몰라. 그리고 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어서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어. 너란 사람에 대해서 난 전혀 모르고 있는걸.]이라는 대답을 원천봉쇄하기 위해서 이다.

그러니까 사실폭로용 고백은 '난 너 좋아해....... 그러니까 나 이제부터 너한테 작업할 거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지 "난 너 좋아해....... 그러니까 우리 사귀자."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버리면 나올 대답은 뻔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사실폭로용 고백을 한 뒤에 "난 당신 싫어요."이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 한은 결코 포기할 이유가 없다는 뜻도 된다.

어 차피 여자마음이라는 게 갈대 같은 것이고 지금 당장 고백을 했을 때에는 아무 생각이 없을지 모르겠지만 '저 사람이 날 좋아하고 있군.'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는 한번이라도 눈길이 가게 마련이다. 이런 식으로 의식하게 된다면 작업을 하기에 정말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후 행동에 신경을 쓰면 분명 다시 한번 기회가 올 수 있다.

그래서 짝사랑인 경우 사실폭로용 고백을 얼마나 빨리 하느냐가 지루한 짝사랑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주는 것이다.

물론 사실폭로용 고백을 했다 할지라도 작업을 제대로 못해서 또 지리지리해져버리는 나 같은 사람도 있지만 그건 일단 그 이후의 문제인 것이고 짝사랑이란 단계별로 진행시켜가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혼자서만 사랑하는 건 에너지낭비다. 상대방이 날 싫어하는 게 아니라면 알리고 사랑하는 게 그나마 짧은 인생 절약할 수 있다.

,
|  1  |  2  |  3  |  4  |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