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서'에 해당되는 글 14건

  1. 3장 그래, 넌 도대체 왜 죽은 거야? 2010.04.09
  2. 2장 나는 자신을 부적응자 라고 소개했다. 2 2010.03.23
  3. 1장 그는 자신을 거짓말쟁이라고 소개했다. 2010.03.13
  4. 11장 외전 2009.07.06
  5. 10장 기억 2009.07.06
  6. 9장 이유 2009.07.06
  7. 8장 안녕 2009.07.06
  8. 7장 누각 2009.07.06
  9. 6장 집착 2009.07.06
  10. 5장 관심 2009.07.06
  11. 4장 변화 2009.07.06
  12. 3장 몽상 2009.07.06
  13. 2장 나락 2009.07.06
  14. 1장 미아 2009.07.06


걷기 시작했지만 처음 계획과는 달리 딱히 나와 거짓말쟁이 씨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거짓말쟁이 씨는 나의 라이터가 필요했고 나는 그에게 필요한 라이터를 가지고 있을 뿐 이었다. 그렇게 걷다가 피곤하면 아무 곳이나 누워서 자고 다시 일어나서 걷기를 반복했다.

“어라?”
“어?”

그리고 어느 때처럼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주위는 새하얀 눈 대신 싱그러운 초록의 풀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놀라는 소리에 잠에서 깬 거짓말쟁이 씨 역시 잠깐 의아함을 표시했다가 이내 하긴 이 동네에 정상이니 표준이니 보통이니 같은 걸 요구하는 게 바보 같은 짓이지 라고 말하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그래, 넌 도대체 왜 죽은 거야?”

그 후 거짓말쟁이 씨가 일어나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주위는 이제 겨울이 아닌 봄이지만 딱히 우리의 일정에 변화는 없었다. 봄이 오고 얼마 안 되어 드물게 길 중간중간 바위가 나타났다. 그럴 때마다 그 위에 앉아 잠깐 쉬었는데 13번째 바위를 만났을 때 거짓말쟁이 씨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물어왔다.

“그러는 거짓말쟁이 씨는 도대체 왜 죽은 거에요? 아니, 잠깐만 그보다 언제부터 말을 놓으셨죠?”
“겉으로 보이게는 내가 너보다 한참은 나이가 많아 보이잖아. 그러니 그건 신경 쓰지 말고 나는 왜 죽었을까?”

주위는 초록의 새싹들과 아름다운 들꽃 따뜻한 봄바람이 가득한데 청년 한 명과 사내 한 명이 서로 마주보고 앉아 우리는 왜 죽었을까? 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니 나는 참 서글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짓말쟁이 씨는 의외로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왜 죽었을까?”

서로 약간의 기억은 돌아왔지만 아직 정확하게 왜 죽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이런저런 상황들만 기억 날 뿐이었다.

“그런데 우리 왜 죽었는지 알아야 할까요?”
“하긴 분명히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겠지.”
“그러니까요.”
“그런데 여긴 이유를 찾으라고 존재하는 공간이잖아.”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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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지도 지지도 않는 곳에서 며칠을 지내면 시간이라는 것에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또다시 잠이 들었다가 일어난 내 눈 앞에는 길게 이어진 붉은 선과 거짓말쟁이 씨가 만든 발자국이 보였다. 그리고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담배를 피우며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는 거짓말쟁이 씨가 있었다.

“일어났어?”
“네.”

대답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이 곳에서 오지도 않을 무언가를 기다리기가 싫었다. 나는 충분히 기다렸고 충분히 지쳤고 충분히 쉬었다.

“이봐, 어디 가는 거야?”
“부적응자요. 기억이 아주 조금 돌아왔는데 아마도 전 부적응자 일겁니다.”
“부적응자라면 사회 부적응자를 말하는 건가?”
“뭐 사회가 아닌 살아 있다는 것에 부적응했다고 해두죠.”
“살아 있다는 것에 적응하지 못하다니 그거 슬픈 일이군. 그래서 어디 가는 건데?”
“처음에는 여기가 역이기에 뭔가가 올 줄 알았어요. 버스 라던지 아니면 마차도 좋고요. 그런데 아무것도 오질 않네요. 그래서 이 길의 끝을 향해서 갈 생각 인데 같이 가실래요?”

거짓말쟁이 씨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고 나 역시 따라서 걸었다.

“처음에 여기가 어딘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어. 그러다가 눈 앞에 붉은 선과 발자국이 있었어. 무턱대고 따라 갔지. 그러다 보니 너를 만났고 말이야. 스스로 인생 부적응자니 뭐니 해도 너 꽤 도움이 되는 편이야.”
“고맙습니다.”

이 사람 한없이 가볍게 행동하는데도 불구하고 거부감 없이 쉽게 사람의 마음 속을 파고드는 재주가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새 담배에 불을 붙이며 계속 이야기를 했다.

“그나저나 서로 약간의 기억이 돌아온 듯 보이는데 뭐 이렇게 걸으면서 서로에 대해서 이야기나 나누자. 이 곳에서 이렇게 만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거 같으니까... 게다가 난 아직 네가 왜 인생 부적응자 인지도 못 들었고 말이야.”
“재미 있겠네요.”

그렇게 그와 나는 새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는 길을 따라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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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보니 멀리서 한 사람이 느긋한 걸음으로 이 곳을 향해 다가 오고 있었다. 얼마 만에 만나는 사람인지 생각해봤지만 얼마나 이 곳에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아서 그냥 포기하고 있으려니 그 사람은 시야에 점점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특별할 건 없었다. 특징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지극히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인상의 사내는 조금은 지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거운 몸을 던지듯 내 옆에 앉으며 사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나 역시 가볍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렇게 서로가 상대에게 인사를 하고서 한동안 우리는 아무 대화도 없이 그냥 그렇게 있었다. 그는 자신의 배낭을 잠시 뒤지더니 조금 난처한 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불 있어요?”
“불..이요?”

나는 잠깐 질문을 이해 못하고 있다가 그가 담배를 꺼내 물었을 때 간신히 질문에 대해서 이해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배낭에서 라이터를 꺼내서 그에게 건넸고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인 후 다시 내게 돌려줬다.

“희한하게 내 배낭에 담배는 있는데 라이터가 없는 거 있죠. 그러고 보니 우리 아직 통성명도 못했네요?”
“그러네요. 그런데 저기 전...”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당연히 서로의 이름 정도는 알려주는 게 예의겠지 라고 나도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산도 안 보이고 사방으로 지평선만 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 라며 주위의 풍경을 구경했고 그렇게 무작정 걸어서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아, 나도 다이어리를 봤으니까 혹시 그쪽도 이름 없어요?”
“네, 이름 부분에는 아무것도 안 적혀 있어서 모르겠네요.”
“재미있네요. 난 거짓말쟁이 라고 해야 하나? 직업란에 소설가라고 적혀 있었으니 거짓말쟁이 인 건 확실한데 그걸 이름으로 부르기는 애매하죠?”
“거짓말쟁이라...”

그는 자신을 거짓말쟁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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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외전

from 경계의서/미아 (완료) 2009. 7. 6. 22:34 by 케르베로스

외전外傳 본편에 빠진 부분을 따로 적은 전기
 
마술사: 히이~ 끝난 줄 알았지?
글쟁이: 끝난 거 맞아.
마술사: 설마!! 잘 만났다. 이 미친 글쟁이.
글쟁이: 왜?
마술사: 넌 우리 천만 솔로부대의 적이야.
글쟁이: 응?
마술사: 처음에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게 헛소리만 적더니 결국 사랑이야기더라.
글쟁이: 아~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구나.
마술사: 네 녀석이 이해할 문제가 아니잖아!!
글쟁이: 사실은 친구 B도 만나고 선생 C도 만날 예정이었지.
마술사: 그런데?
글쟁이: 기획은 봄에 하고 작업은 여름에 하다 보니 귀찮아졌어.

-마술사가 담배에 불을 붙였습니다.
-마술사가 담배연기로 글쟁이를 공격했습니다.
-글쟁이는 2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글쟁이: 이게 무슨 짓이야!!
마술사: 그리고 내가 너무 한 게 없잖아.
글쟁이: 그래도 네가 제일 액션이 많았어.
마술사: 하긴 10장중에 전투라고는 딱 한번 있었으니까...
글쟁이: 구름에서 번개가 콰쾅~ 얼마나 멋져!!
마술사: 미친... 그래서 이 글은 정말 여기서 끝이야?
글쟁이: 모르겠다.
마술사: 나는 하녀복장 종업원의 정체가 궁금하다.
글쟁이: 너만 궁금하다.
마술사: 어째서?
글쟁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다고, 섬세하게 보지들 않아.
마술사: 슬픈 현실이네.
글쟁이: 슬프지. 그런데 사실 나도 그 종업원의 정체 몰라~
마술사: 덜 맞았지?
글쟁이: 미안.
마술사: 그럼 소년과 소녀는 그 이후로 행복하게 지낸 거야?
글쟁이: 이건 진짜 비밀이야, 내가 달에 가서 취재했지만 비밀이야.

-마술사가 담배에 불을 붙였습니다.
-글쟁이가 공격 저지 시도를 합니다.

마술사: 왜 말하게?
글쟁이: 사실 그 두 사람은 성격차이로 그만 이혼을...
마술사: 이런~ 개나 소나 성격차이구만.

-이름 없는 소년이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이름 없는 소년이 가방에서 사과를 꺼내 글쟁이를 공격합니다.
-글쟁이는 8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크리티컬 히트!!)
-글쟁이가 죽었습니다.

이름 없는 소년: 네 멋대로 지어내지마, 잘 지내고 있다고!!
마술사: 젠장할~ 야 죽이면 다음편이 안 나온다고...
글쟁이: 범인은 이름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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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기억

from 경계의서/미아 (완료) 2009. 7. 6. 22:33 by 케르베로스

기억記憶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생각해냄
 
「나는 전생에 뭐였을까?」
「그런 거 알았으면 좋겠다.」
「그때도 난 널 알고 있었을까?」
「모르지.」
「궁금하다, 예전에 나랑 너의 관계.」
「다음 생에는 태어나고 싶지 않다.」
「왜?」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나는 구름으로 태어나고 싶다.」
「구름은 떠다니니까 불안해.」
「그럼 넌 내 그림자로 태어나라.
힘든 일은 내가 다 할 테니 넌 내 곁에만 있어줘.」
「바보, 생각해볼게.」
「넌 아마도 고양이였을 거야, 그것도 사나운.」
「맹수 인거네?」
「그렇지.」
「그럼 너는?」
「뭐 같아 보이는데?」
「곰.」
「난 곰 좋더라.」
「고양이하고 곰이라 너무 안 어울린다.」
「머리에 사과나무를 심는 거야.
햇볕만 쬐어도 광합성으로 힘이 불끈!!
열매가 맺히면 달나라로 여행을 떠나서
토끼가 파는 떡이랑 교환 하는 거지.
그리고 네가 그리워지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게.」
「같이 가면 되잖아.」
「씨앗을 심을 바보는 나 하나면 충분해.」
「그런 헛소리 할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힘들겠다.」
「난 너 하나면 충분해.」
「고마워, 이제 그만 가자.」
「그래.」

멀리서 들려오는 기차소리에 잠에서 일어났다.
맞은편 의자에 소녀가 자고 있다.
마술사는 오지 않을 것 같다.
가방 안에 사과 하나가 들어있다.
오른쪽 손목의 붉은 피가 모여 만들어진 사과.

「이유는 찾으셨습니까?」
「아뇨, 하지만 혼자가 아니니까 달로 갈 수 있을 거 같아요.」

차장이 하얀 떡을 꺼내서 내민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사과를 건넨다.
이제 정말로 여행을 마칠 때가 된 것 이다.
이야기의 끝은 밤이 좋지만 이른 새벽이 라도 괜찮다.
이유를 찾은 사람 찾기를 포기한 사람 이유가 되어버린 사람.
모두들 각자의 방식으로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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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이유

from 경계의서/미아 (완료) 2009. 7. 6. 22:22 by 케르베로스

이유理由 존재의 기초가 되거나 진리라고 할 수 있는 조건
 
천천히 상황을 살핀다.
확실히 상대의 숫자가 너무 많다.

「소년에게 경계를 만든 게 자네인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 다음 담배를 꺼낸다.
순간 하얀 깃털이 날아와 담배를 반으로 잘랐다.

「이게 무슨 짓이지?」
「연기술사 엘, 담배 연기를 이용할 생각은 하지 마라.」

제기랄, 녀석들은 뒷조사를 마친 모양이다.
담배 연기를 쓰지 못하게 된다고 해서 불리해지는 건 아니다.
다만 마나의 소모가 많아지고 결국 지게 되겠지만...
하지만 단순히 시간을 벌기 위한 거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왜 소년을 돕는 건가?」
「나는 도와줄 수 있으니까...」

녀석들은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웃어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이게 더 신나잖아.」
「마술사 주제에 감히 우릴 놀리는 건가?」

흩날리는 하얀 깃털사이로 거대한 낫이 보인다.
침착하게 공격을 피하고 소환해둔 구름을 확인한다.

-콰쾅!!

「신의 천벌이 담긴 벼락이다.」
「신을 농락하지 마라!」

쉴 새 없이 상대의 위치를 확인하고 벼락을 떨어뜨린다.
폭죽놀이를 하는 것처럼 불꽃이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너희들은 착각이 심해.
무슨 이유가 있어야만 모든 게 이해가 되겠지.
하지만 무지하게 위험한 일을 그냥 할 수도 있는 거야.
소년이 이유를 못 찾았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다시 나락으로 데려가겠다는 건 억지잖아.」
「이유도 없이 왜 살아가야 하는가?」
「다른 사람의 이유가 될 수 있으니까...
자기 자신이 누군가의 이유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잖아, 뭐가 더 필요한데?
너희들도 다를 바 없잖아. 이유가 있어서 사는 거야?
그저 신의 이유이기 때문에 살고 있는 거 아니야?」

녀석들의 공격이 멈춘다.
지금쯤이면 소년은 무사히 역에 도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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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안녕

from 경계의서/미아 (완료) 2009. 7. 6. 22:13 by 케르베로스

안녕安寧 만나고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
 

하얀 입김이 새어나왔다.
늦은 시간의 거리는 벌써 차갑다.
아파트 입구에 크림색 롱 카디건을 입은 그녀가 있었다.

「이제부터는 따로 행동할까?」
「가지 마요.」
「이야기 했잖아.」
「무슨?」
「내가 도와주겠다고...」
「그러니까 있어줘요.」

마술사는 웃으며 날 바라본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마술사는 그렇게 말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이것이 마지막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그녀 옆에 가서 앉는다.
그녀는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다.

「안녕?」

그녀를 깨워본다.
그녀는 놀라지도 않고 가만히 날 바라본다.

「오랜만이네...라고 할 줄 알았어?」

갑자기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작은 주먹으로 때린다.
나는 눈물이 나는 걸 간신히 참으며 대답한다.

「미안, 기억을 잃어버려서 이름을 부를 수가 없어.」
「나는 영(그림자 영影), 너는 운(구름 운雲).」
「응?」
「그보다 이유 찾았어?」
「아니, 아직 넌?」
「난 이렇게 찾았잖아.」

그녀가 환하게 웃는다.

「이거 네 가면.」
「나한테는 필요 없어.
너한테 주는 선물, 이제 네 앞 에서는 솔직해질 거야.」
「고마워.」
「저기 있잖아. 이유 계속 찾을 거야?」
「모르겠다.」
「이제부터 내가 널 웃게 하고 울게 하고 외롭게 만들어줄게.
대신 나는 네가 옆에 있어도 외로우니까 오랫동안 계속 내 옆에 있어줘.
부탁이야. 그러니까 같이 돌아가자.」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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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누각

from 경계의서/미아 (완료) 2009. 7. 6. 22:08 by 케르베로스

누각(樓閣)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문과 벽이 없는 다락집 
 

이곳은 나락과 달 사이에 존재하는 누각.
일찍이 사람들은 공중누각이라고 부른 적도 있었다.
지금은 다른 뜻으로 해석되지만 나랑은 상관없다.

「왜 마술사가 된 거에요?」
「능력이 있었으니까...」
「다른 일을 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요?」

마술사가 소년을 가만히 바라본다.
소년은 애매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마술사를 바라본다.

「하고 싶은 일을 해서는 먹고 살수가 없었어.
능력이 있는 놈이 노력을 하면 일류가 되고,
능력이 없는 놈이 노력을 하면 이류가 되고,
능력이 없는 놈이 노력을 안 하면 삼류가 된다고 했어.
아무래 해도 이류가 내 한계였지.
세상이치라는 게 간단해서 내 노력의 결과물은
일류를 빛나게 해주는 멋진 비교대상이 된 후에 무시당했지.
그 이상은 될 수가 없었어.」
「그랬군요.」

마술사는 담배에 불을 붙인다.
과거를 바라보던 눈동자에 다시 현실이 비친다.

「그래서 마술사가 되기로 했어.」
「후회 안 해요?」
「안 해.」

마술사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오히려 소년의 질문에 망설임이 보인다.

「후회하면 어쩔 건데?」
「네?」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어.
난 내가 내린 선택에 반성은 해도 후회는 절대 안 해.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야.」

두 사람은 창밖만 바라보고 있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끼어들 일은 아닌 거 같지만,
혹시 자네들이 찾는 사람 A 아닌가?
작은 체구에 하얀 피부의 귀여운 소녀였는데...」
「네, 맞습니다.」
「A를 아세요?」
「아침에 자네들을 보내고 나서 손님이 한 명 있었지」
「혹시 제 이야기를 하던가요?」
「확실히 내가 끼어들 일은 아닌 거 같지만,
한참을 고민하다가 자네의 아파트를 가르쳐 주었네. 미안하네.」
「아뇨, 보고 싶었어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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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집착

from 경계의서/미아 (완료) 2009. 7. 6. 21:52 by 케르베로스

집착(執着) 마음에 새겨두고 잊지 않음

「가면 자체만 보고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못해.
불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꼭 불같은 가면을 쓰지는 않아.
반대로 차가운 얼음 같은 가면을 쓰는 사람도 있어.
즉 섣부른 판단으로 생긴 결과는 스스로가 지는 거야.」
「그녀는?」
「밝고 귀여운 가면을 쓴 외로운 녀석.」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마술사가 허겁지겁 따라 일어났다.

「그녀는 죽었으니까 이곳 어딘가에 있을 거야.」
「알아요.」
「너라면 찾을 수 있을지 몰라.」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탁자위의 동전이 보인다.

「그 와중에도 값을 치르고 갔네.」
「그럼 다시 영업 시작!!」
「에~ 어째서?」

소년과 마술사가 해가 지는 거리를 걷고 있다.
마술사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소년을 바라본다.

「기억 잃어버린 적 있어요?」
「아니, 없어.」
「기억을 찾으면 지금의 저는 죽는 건가요?」
「아니, 지금의 너도 예전의 너도 같은 너잖아.」
「만약 스스로 기억을 지운 거라면...」
「다시 한 번 더 지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에요.」
「네 생각만큼 복잡한 것도 아니야.」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야?」
「A를 찾아볼 생각이에요.」
「그녀가 너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해?」
「그건 A만이 알겠죠.」
「넌 왜 여기로 왔어?」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서...」
「그럼 그녀는 왜 여기로 왔을까?」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서?」
「너 때문에 죽었다면 네가 그 이유겠지.」
「그렇겠죠.」
「그럼 네가 안 찾아도 그녀가 먼저 찾아 올 거야.」
「제가 그 이유라면 좋겠네요.」

두 사람의 그림자가 택시 승강장에서 멈춘다.
아침에 만났던 택시 기사가 여전히 있었다.

「우연치고는 시간이 절묘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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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관심

from 경계의서/미아 (완료) 2009. 7. 6. 21:51 by 케르베로스

관심(觀心) 마음에 두고 잊지 않음

「죽었어.」

시간이 멈추었다가 다시 재빠르게 흐른다.
카페의 사장은 벽면을 가득 메운 가면중 하나를 들고 왔다.
이름 없는 소년은 가만히 가면을 받아 들었다.

「이곳은 카페 페르소나(Cafe Persona).」
「알아요.」
「그리고 이곳은 캐스킷 페르소나(Casket Persona).」

마술사 엘은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한 모습이다.
메이드 복장의 종업원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모습이다.
소년은 사장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죽은 후 그녀의 부탁으로 가면을 만들었지.」

사장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성냥 끝 불꽃이 회색연기를 만들어내고 사라진다.

「사장님 카페 안은 금연이잖아요.」
「오늘 장사는 여기까지...」
「네.」

간단한 해결방법이었다.
사장은 창밖을 바라보며 계속 이야기를 했다.

「나는 죽은 사람의 가면을 만들고 보관하고 돌려주는 역할.
그녀의 죽음을 모르고 있었지?」
「네.」
「아름다운 가면이지만 이제 그 주인은 너다.」
「하지만 전 기억이 없어서 그녀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녀는 널 잘 알고 있었어.」
「그런가요?」

소년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사장은 소년의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잠깐 이야기를 멈춘다.

「누군가를 알기 위해서는 일단 관심이 필요해.
관심은 결국 그 사람을 좋아하게 만들고 집착하게 만들지.
결국 관심과 집착은 종이 한 장 차이야.」
「꼭 그런 건 아니잖습니까?」
「맞아, 내가 한 말에는 하나의 조건이 필요해.」
「그게 뭔가요?」
「왜 자기 곁에만 두고 싶어 할까?」
「외로우니까?」
「그래, 외로우니까 그러는 거야.」
「애정 결핍?」

마술사 엘의 얼빠진 질문에 카페안의 시간이 다시 멈춘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재빠르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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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변화

from 경계의서/미아 (완료) 2009. 7. 6. 21:38 by 케르베로스

변화(變化) 사물의 성질이나 모양이 다르게 변하다

며칠째 내리는 비 때문에 담배가 눅눅하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비 내리는 도시는 지나칠 정도로 차분하다.
나는 마술사 엘.
연기를 부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연기술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지금은 이름이 없는 소년의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유를 찾는 걸 도와주지.」
「네? 아, 고맙습니다.」

한 사람이 지내기에 좋은 크기의 아파트였다.
가구라고는 침대와 책상 그리고 낡은 의자가 전부.
새하얀 방은 흐린 하늘로 인해서 무기력한 회색으로 보였다.
흰색은 시작의 설렘과 변화에서 나오는 두려움 모두를 가지고 있다.
변화란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쉽게 단정 지을 순 없다.
모든 것은 자기의지와 상관없이 변화를 하며 여기까지 왔다.
상황은 늘 그런 식으로 흐른다.
아마 소년의 상황도 그렇게 흐르고 있을 것이다.

「내일 사람을 만나러 갈건 데 같이 가실래요?」
「그러도록 하지.」

녀석의 기억은 다이어리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 아파트도 녀석의 기억이 아닌 다이어리에서 찾았다.
이유를 찾는 것보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야 할지도 몰랐다.

「만날 사람이 누군데?」
「주소록 가장 위에 적혀 있는 A요.」
「알았다.」

만약 자신의 기억을 스스로 지운 거라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런 식의 기억 찾기는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건 내가 아니라 저 녀석이다.

다음날 우리는 카페 페르소나로 향했다.
A가 아르바이트 하는 장소였다.
다행히 그 날 비는 그쳤고 택시 기사는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했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A양?」

카페의 사장은 이름을 듣고 기억에서 찾아보려고 애를 쓴다.
우리는 그냥 있기가 부담스러워 주문을 했다.

「레모네이드 주세요.」
「난 에스프레소.」

소설에나 나올법한 메이드 복장의 종업원이 주문을 받았다.
그녀는 주문을 받고도 한참동안 소년을 바라보다가 자리를 떠났다.
소년을 알고 있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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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몽상

from 경계의서/미아 (완료) 2009. 7. 6. 21:35 by 케르베로스

몽상(夢想) 꿈과 같은 헛된 생각

두 사람이 있다.
창밖의 풍경은 쉴 새 없이 바뀌고 있었다.
목적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기차가 가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이름이 없는 소년과 마술사 엘은 서로 마주본 채 앉아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둘은 닮은 듯 닮지 않았다.

「행복해?」

엘의 갑작스런 질문에 소년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리고는 한참을 고민한다.

「그저 그래요.」

의외로 평범한 대답이었다.
어쩌면 가장 무난한 대답이라고 생각한지도 모르겠다.

「사실 행복이나 불행은 사는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아.
정말 영향을 미치는 건 살아갈만한 이유가 있냐는 거지.」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불행해도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으면 악착같이 사는 게 인간이야.
행복해도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으면 자살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이지.」
「살아가야 할 이유라...」

잠시 대화가 멈춘다.
창밖의 풍경은 여전히 빠르게 움직인다.

「꿈같은 건가요?」
「네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렇군요.」
「너한테는 이유가 있어?」
「이제부터 찾아 볼 생각이에요.」

어울리지 않게 두 사람은 어려운 이야기를 나눈다.

이유라...
나한테는 이유가 있던가?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잠깐 쉰다.
담배를 꺼내 물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이곳은 나락과 달 사이의 중간지점이었다.
나도 아직 달까지 간 적은 없었다.
마술사는 아니었지만 소년은 달로 가고 있었다.
갈 수 있을까?
마술사가 도와준다면 가능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달로 가는 기차에 오르는 결정은 소년이 해야 한다.
그건 누구도 도와 줄 수 없는 일이고 마술사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기차에 올라탄다.
아마 나락의 기차역에서 나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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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나락

from 경계의서/미아 (완료) 2009. 7. 6. 21:33 by 케르베로스

나락(奈落)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극한 상황

눈이 내리는 숲에 서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이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무작정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하얀 입김이 시야를 가린다.

뒤를 돌아다본다.
나를 쫒아오는 발자국과 오른쪽 손목까지 이어진 붉은 선.
여긴 달이 아니라 나락인가?

한참을 더 걸어서 도착한 곳은 오래된 목조 건물이었다.
지붕의 앞쪽 중앙에는 붉은색의 한자로 역(驛)자가 쓰여 있었다.

건물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메고 있던 가방에서 티켓을 꺼내 확인했다.
기차를 기다리며 옆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피곤하다.

「딱히 할 이야기가 없네.」
「그러게...」
「사실 난 너랑 문자주고 받다가 생기는 이런 공백이 좋아.」
「그게 뭐가 좋냐?」
「글쎄~ 좋아하는 사람이랑 이야기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
「응, 난 그게 좋아.」
「그런데 나는 두 손 꼭 잡고 거리를 걷는 게 더 좋아.」
「난 걷는 거 싫은데...」
「그런 느낌이랄까?」
「바보.」

멀리서 들려오는 기차소리에 잠에서 일어났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맞은편 의자에 소년이 앉아 있다.

「반가워.」
「네? 네, 안녕하세요.」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건 처음이네.」

소년이 미소를 짓는다.
아는 사람인 거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애쓰지 마. 어차피 기억나지 않을 거야.」
「그런가요?」
「나는 마술사 엘(EL).」
「저는...」

얼른 가방에서 다이어리를 꺼내 제일 뒷장을 펼친다.
그리고 내 이름을 확인한다.

「이름을 잃어 버렸어요.」

그 다음은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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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미아

from 경계의서/미아 (완료) 2009. 7. 6. 21:21 by 케르베로스

미아(迷兒) 길을 잃은 아이

좋게 말해서 엉뚱하고 나쁘게 말해서 미친 거고,
애매하게 말하자면 나는 아이 혹은 청년 아니면 이상한 녀석.
어찌되었건 달라지는 건 없다.
이야기의 시작은 새벽이 좋지만 깊은 밤이 라도 괜찮다.

하루, 이틀 그리고 일 년.
존재하지 않는 시간의 벽을 넘어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꿈과 현실 사이를 방황했다.
어떤 이는 꿈을 포기하라고 어떤 이는 꿈을 위해 살라고 했다.

답은 없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고 나 역시 알 수 없었다.
열심히 살자는 각오가 마음속을 맴돌며 나를 괴롭혔다.

나는 누군가의 친구이자 아들이며 형이고 동생이었다.
때로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역할에 맞는 가면을 쓰고 연기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는 미친 거라고 간단하게 치부하며 날 멀리했다.

제기랄,
누가 만든 건지도 모르는 나이 값도 해야만 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미아가 되어 있었다.

도망치자고 계속 중얼거렸다.
꿈과 이상이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열정에 의한 노력의 결과물이 단지 웃음거리가 되어버리는 현실.
그렇지만 나는 늘 제자리였다.

사는 건 죽는 것만큼 힘들었고 죽는 것은 사는 것 보다 더 힘들었다.
어디에 있어도 마음 편하게 쉬질 못했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친구를 만나도 괜찮다며 웃었다.
나는 나보다 힘든 사람이 더 많다는 말이 정말 듣기 싫었다.
옆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어도 내 상처는 아프다.

사회에 대한 불만은 쌓여만 가고 나는 미친 거 같았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모아 달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는 늘 마음을 먹었으면 행동을 빠르게 하라고 말씀 하셨다.
다음 날 바로 티켓을 사고 여행 준비를 마쳤다.
지인들에게는 몇 년간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연락을 했다.
기념품을 사오라는 말을 들은 뒤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 나는 죽었다.
하늘이 보이는 창가에 서 있다가 그대로 추락했다고 한다.
오른쪽 손목에 붉은 선도 생겨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죽어버린 내 시체는 어디에도 없었다.

사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달로 여행을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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