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시작했지만 처음 계획과는 달리 딱히 나와 거짓말쟁이 씨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거짓말쟁이 씨는 나의 라이터가 필요했고 나는 그에게 필요한 라이터를 가지고 있을 뿐 이었다. 그렇게 걷다가 피곤하면 아무 곳이나 누워서 자고 다시 일어나서 걷기를 반복했다.

“어라?”
“어?”

그리고 어느 때처럼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주위는 새하얀 눈 대신 싱그러운 초록의 풀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놀라는 소리에 잠에서 깬 거짓말쟁이 씨 역시 잠깐 의아함을 표시했다가 이내 하긴 이 동네에 정상이니 표준이니 보통이니 같은 걸 요구하는 게 바보 같은 짓이지 라고 말하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그래, 넌 도대체 왜 죽은 거야?”

그 후 거짓말쟁이 씨가 일어나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주위는 이제 겨울이 아닌 봄이지만 딱히 우리의 일정에 변화는 없었다. 봄이 오고 얼마 안 되어 드물게 길 중간중간 바위가 나타났다. 그럴 때마다 그 위에 앉아 잠깐 쉬었는데 13번째 바위를 만났을 때 거짓말쟁이 씨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물어왔다.

“그러는 거짓말쟁이 씨는 도대체 왜 죽은 거에요? 아니, 잠깐만 그보다 언제부터 말을 놓으셨죠?”
“겉으로 보이게는 내가 너보다 한참은 나이가 많아 보이잖아. 그러니 그건 신경 쓰지 말고 나는 왜 죽었을까?”

주위는 초록의 새싹들과 아름다운 들꽃 따뜻한 봄바람이 가득한데 청년 한 명과 사내 한 명이 서로 마주보고 앉아 우리는 왜 죽었을까? 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니 나는 참 서글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짓말쟁이 씨는 의외로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왜 죽었을까?”

서로 약간의 기억은 돌아왔지만 아직 정확하게 왜 죽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이런저런 상황들만 기억 날 뿐이었다.

“그런데 우리 왜 죽었는지 알아야 할까요?”
“하긴 분명히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겠지.”
“그러니까요.”
“그런데 여긴 이유를 찾으라고 존재하는 공간이잖아.”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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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지도 지지도 않는 곳에서 며칠을 지내면 시간이라는 것에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또다시 잠이 들었다가 일어난 내 눈 앞에는 길게 이어진 붉은 선과 거짓말쟁이 씨가 만든 발자국이 보였다. 그리고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담배를 피우며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는 거짓말쟁이 씨가 있었다.

“일어났어?”
“네.”

대답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이 곳에서 오지도 않을 무언가를 기다리기가 싫었다. 나는 충분히 기다렸고 충분히 지쳤고 충분히 쉬었다.

“이봐, 어디 가는 거야?”
“부적응자요. 기억이 아주 조금 돌아왔는데 아마도 전 부적응자 일겁니다.”
“부적응자라면 사회 부적응자를 말하는 건가?”
“뭐 사회가 아닌 살아 있다는 것에 부적응했다고 해두죠.”
“살아 있다는 것에 적응하지 못하다니 그거 슬픈 일이군. 그래서 어디 가는 건데?”
“처음에는 여기가 역이기에 뭔가가 올 줄 알았어요. 버스 라던지 아니면 마차도 좋고요. 그런데 아무것도 오질 않네요. 그래서 이 길의 끝을 향해서 갈 생각 인데 같이 가실래요?”

거짓말쟁이 씨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고 나 역시 따라서 걸었다.

“처음에 여기가 어딘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어. 그러다가 눈 앞에 붉은 선과 발자국이 있었어. 무턱대고 따라 갔지. 그러다 보니 너를 만났고 말이야. 스스로 인생 부적응자니 뭐니 해도 너 꽤 도움이 되는 편이야.”
“고맙습니다.”

이 사람 한없이 가볍게 행동하는데도 불구하고 거부감 없이 쉽게 사람의 마음 속을 파고드는 재주가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새 담배에 불을 붙이며 계속 이야기를 했다.

“그나저나 서로 약간의 기억이 돌아온 듯 보이는데 뭐 이렇게 걸으면서 서로에 대해서 이야기나 나누자. 이 곳에서 이렇게 만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거 같으니까... 게다가 난 아직 네가 왜 인생 부적응자 인지도 못 들었고 말이야.”
“재미 있겠네요.”

그렇게 그와 나는 새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는 길을 따라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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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보니 멀리서 한 사람이 느긋한 걸음으로 이 곳을 향해 다가 오고 있었다. 얼마 만에 만나는 사람인지 생각해봤지만 얼마나 이 곳에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아서 그냥 포기하고 있으려니 그 사람은 시야에 점점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특별할 건 없었다. 특징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지극히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인상의 사내는 조금은 지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거운 몸을 던지듯 내 옆에 앉으며 사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나 역시 가볍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렇게 서로가 상대에게 인사를 하고서 한동안 우리는 아무 대화도 없이 그냥 그렇게 있었다. 그는 자신의 배낭을 잠시 뒤지더니 조금 난처한 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불 있어요?”
“불..이요?”

나는 잠깐 질문을 이해 못하고 있다가 그가 담배를 꺼내 물었을 때 간신히 질문에 대해서 이해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배낭에서 라이터를 꺼내서 그에게 건넸고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인 후 다시 내게 돌려줬다.

“희한하게 내 배낭에 담배는 있는데 라이터가 없는 거 있죠. 그러고 보니 우리 아직 통성명도 못했네요?”
“그러네요. 그런데 저기 전...”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당연히 서로의 이름 정도는 알려주는 게 예의겠지 라고 나도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산도 안 보이고 사방으로 지평선만 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 라며 주위의 풍경을 구경했고 그렇게 무작정 걸어서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아, 나도 다이어리를 봤으니까 혹시 그쪽도 이름 없어요?”
“네, 이름 부분에는 아무것도 안 적혀 있어서 모르겠네요.”
“재미있네요. 난 거짓말쟁이 라고 해야 하나? 직업란에 소설가라고 적혀 있었으니 거짓말쟁이 인 건 확실한데 그걸 이름으로 부르기는 애매하죠?”
“거짓말쟁이라...”

그는 자신을 거짓말쟁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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