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from 시작/생각 2009. 7. 7. 23:05 by 케르베로스
연애의 적은 여러 가지가 있다.

생활의 고단함, 다른 이성, 불확실한 미래,
주변의 반대, 야망, 다른 가치관, 과거의 연애, 서로 다른 스킨쉽 허용 범위,
그 밖에 많은 것들 중에서 의외로 기대라는 것이 들어있다.

기대라, 기대가 왜 연애의 적이 될까.
남자가 여자를 몇번 대문까지 데려다주기 시작하면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굳어져간다.
그리고 그러리라 기대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하지 않았을 경우에 서운하게 생각하고
심지어 애정을 의심하게 된다.

때로 사랑은 사소한 것으로도 흔들리는 연약한 감정이다.
정말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여 전체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어버리는 때가 있다.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애정이나 신뢰라고 다들 알고 있지만,
기념일을 기억하고 있느냐 아니냐
혹은 연락의 횟수가 얼마나 되나에서 둘은 옥신각신하다가 헤어지기도 한다.
나는 여리다는 평가를 많이 듣는다.

글쎄, 내가 여린가?
아마 능력이 부족해서 나를 지키는 힘이 없을지는 몰라도
그리 여리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무디고 상처를 받지 않는 편인데,
역설적으로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에
상처를 받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몇년 전만 해도 나는 순하디 순한 짐승이어서
내가 진심으로 다가가면 그들이 응당 화답하리라 생각하며
기대를 품었고 거기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부정적 결과를 받으면
내 존재 자체를 부정 당한 것처럼 떨거나 슬퍼하거나 울었다.
세상을 원망하고 나를 상처준 사람들에게 마음 속으로
여러 번 왜 그랬냐고 외치다가, 나는 곧 깨달았다.
그들이 줘도, 나는 안 받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내가 오렌지 주스도 아닌데 백퍼센트일 필요는 없다.
진한 맛을 누구나 좋아하지는 않으니,
개인의 취향이고 그냥 그럴 수도 있는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것까지 발목을 잡히기에 우리의 인생은 피곤한 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웬만한 것은 그럴 수 있지하고 넘기고 싶다.

물론 내 기준에서는 웬만하지 않은데 남에게는 웬만한 것도 있지만,
상대방의 행동 하나, 몸짓 하나 해석하다간
삶의 피로라는 녀석이 내 목을 꺾어버릴 것이다.

윤동주도 아닌데 스치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사람은 관계를 망치게 된다.
그리하여 당신도 나도 무디게 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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