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생각'에 해당되는 글 129건

  1. 시험이 끝났습니다, 두번째 2 2009.12.08
  2. 신뢰라는 단어의 무게 2009.11.29
  3. 너무 쉽게 말을 한다. 2009.11.25
  4. 시험 기간 입니다, 두번째 2009.11.24
  5. 취향의 문제 4 2009.11.19
  6. 휴식 2009.11.16
  7. 한 여름 밤의 꿈 2009.11.15
  8. 감기 2009.11.12
  9. 대화의 조건 2009.11.12
  10. 세계 속의 한국인 2009.11.06
  11. 동물적 감각 2009.11.03
  12. 10월 5주차 잡담 2009.10.28
  13. 시험이 끝났습니다, 첫번째 2009.09.20
  14. 9 2009.09.09
  15. 시험 기간 입니다, 첫번째 2009.09.02
  16. 이사 2 2009.08.23
  17. 연애의 황금기 2009.08.23
  18. 슬프지만 안녕 2009.08.12
  19. 8월 2주차 잡담 2009.08.08
  20. 파이어폭스 10억 다운로드 달성 2 2009.08.01
  21. 키친 2 2009.07.30
  22. 2006년 2009.07.26
  23. 2005년 2009.07.26
  24. 이성적인 행동에 대한 의문 2009.07.07
  25. 자살 2009.07.07
  26. 아름다움과 추함 2009.07.07
  27. 이사람아 이음새 하나가 천년을 결정하는겨 2009.07.07
  28. 상황 2009.07.07
  29. 역활 2009.07.07
  30. 멋진 화음 2009.07.07

시험이 끝났습니다, 두번째

from 시작/생각 2009. 12. 8. 18:50 by 케르베로스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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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라는 단어의 무게

from 시작/생각 2009. 11. 29. 20:47 by 케르베로스


한국이나 외국이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겠지만 의식주 같은 생활 필수 조건을 제외하고 가장 필요한 건 우습게도 인간이다. 그냥 인간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인간 그리고 나를 믿어주는 인간이 아니겠는가?

결혼한지 3년도 되지 않은 신혼의 아는 누나에게 "누나, 결혼의 장점이 뭐야?" 라고 물었을 때 "내 편이 생겼다는 거?" 라는 대답이 돌아왔듯이 믿을 수 있는 인간의 잠정적인 완성 단계는 서로의 편에 서주는 것이다. 물론 무턱대고 일방적인 신뢰는 독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말 자체는 너무나도 달콤한 과일과도 같이 다가온다.

타국에서 소수의 같은 나라 사람들 중에서 나와 인연의 끈을 맺은 사람들은 정말 소수의 소수이지만 그 몇 안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현재 자신의 이득을 위해 혹은 앞으로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가치를 평가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참 슬프다.

속인다고 해서 내가 끝까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미안하지만 넌 이번 일에서 빠져야 겠다." 고 말한다면 잠깐 섭섭하겠지만 오히려 그 사람에 대한 믿음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내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쓸모 없는 자식." 이라고 한다면 이건 당연히 그 사람에 대한 믿음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는가?

간혹 사람을 상대하는 게 나는 정말 힘들다. 혹은 사람을 믿는 게 나는 정말 힘들다. 라고 말을 하면 나를 이상하게 보거나 무슨 사회부적응자처럼 대하는 데 사람이 살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상대의 등 뒤를 찌르는 일을 하기도 하는 거고 자기도 잘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상대의 등 뒤를 찌르기도 하는 거고 자기가 원해서 상대의 등 뒤를 찌르기도 하고...

그러니 함부로 나에게 돌을 던지지 않았으면 한다. 나도 똑같고 당신도 똑같고. 오십보 백보. 다만 이번 일에서 배신감을 느낀 건 나니까 난 그냥 한심한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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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쉽게 말을 한다.

from 시작/생각 2009. 11. 25. 20:52 by 케르베로스


정치, 종교, 성별 에 관련한 이야기는 한 번 이야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문제고 논리적으로 설득시키기도 어려워서 귀찮은 주제에 속하고 반짝하고 떠 오른 이슈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글을 잘 적는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이해하기 편하게 이야기 해주기에 나같은 아웃사이더는 끼지 않는 게 편하다.

최근 시험공부를 한다고 말만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이선민 씨가 무한도전의 뉴욕 편을 대차게 비판한 글을 읽었다. 이미 그 글에 대한 반박문을 한 연예인이 남겼고 이선민씨의 사과문 또한 올라왔기에 더이상 일을 크게 만들 필요는 없지만 내가 몇 자 끄적거린다고 넓고 깊은 넷이라는 공간에 파도가 치지는 않을테니까...

확실히 외국에서 특히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유학생활을 하다보면 한국인이 영어를 다른 남미나 인도 사람들처럼 잘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남미나 인도 사람들은 어순이라도 같은 건지 스피킹 자체는 아주 거침 없이 말하는 걸 볼 수 있다. 게다가 타국의 학생들보다 한국 학생들은 레포트나 에세이를 적어낼 때 타인 즉 서로 같은 한국 출신의 유학생의 것 혹은 인터넷에서 구한 자료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그대로 카피하는 행동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선민 씨가 남긴 글 처럼 영어에 대한 투자가 엄청난 한국의 현상황을 보면 유감스러운 일 인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선민 씨의 글을 몇 번을 다시 읽어도 나는 안타까움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호주에 처음 유학을 와서 몇 년을 배운 영어 한마디 못하고 선생의 질문에 그저 미소만 짓기도 하고 관공서에 가서 영어 못한다고 무시 당해서 집에서 혼자 울기도 하고 이상한 곳에서 미아가 되기도 하며 지금까지 느낀 건 역시 한국인들이 영어를 잘하면 좋겠다. 그래서 외국인들에게 무시 안 당하면 좋겠다 라는 감정인데 그건 일종의 거창하게 보자면 애국심에서 나오는 안타까움이다.

이선민 씨의 글이 불쾌한 이유는 안타까움에서 나온 애정어린 독설이 아니라 한국인들 영어 못해서 같은 한국 출신인 자기 쪽팔리니까 제발 그러지마. 라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뉴욕이라는 동네가 혹은 이선민 씨가 계시는(계셨던) 캐나다라는 동네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비 영어권의 사람들과 비교했을때 한국인은 영어를 아주 못하는 건 아니다. 몇몇 한국인들은 정말 영어권 사람만큼 영어를 하며 정말 지독하게 토플(호주에서는 아이엘츠)을 공부해서 문제유출 같은 게 아닌 본실력으로 뛰어난 점수를 받는 경우도 허다하며 문법과 리딩에서의 강함은 비교불가 일 정도이다.

세상 모든 일이 동전 양면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분명 영어 공부도 안하고 영어도 쥐뿔 못하는 한국인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한국인을 무시하는 외국인도 있을 것이다. 뉴욕까지 가서 한국 음식을 홍보한다면서 최소한의 영어회화 정도도 외우지 않은 무한도전 멤버들이 부끄러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을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본다. 분명 나보다 나이도 많으신 거 같은데 캐나다에서 영주권인지 시민권인지 잘 모르겠지만 받으셨다고 해도 같은 민족끼리 "쪽팔린 추태" 라던지 "기생충 같은" 이라던지 "굴욕스러운 국민" 이라던지 이런 단어는 혼자서 속으로 하셨으면 좋겠다. 나도 남들에게 한국에서 마음 편한 날 없고 힘들었다, 한국 참 실망스럽다 라고 말하지만 최소한 같은 한국인을 까지는 않으려고 노력한다. 한국인이 그리고 한국이 잘되면 좋겠다고 말하려고 노력한다. 말이라는 게 그렇다. 부드럽고 차분하게 이야기하면 좋지 않은가? 왜 굳이 과격한 표현을 사용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게 쪽팔리면 이선민 씨는 그냥 한국에 얽히지 않았으면 한다. 영어 조금 잘한다고 대단한 거 아니다. 뉴욕에 간다고 해서 한국인이 영어 꼭 잘하라는 법도 없다. 뉴욕 한 복판이든 북극의 한 복판이든 한국인이 한국 말을 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영어 못하는 건 전혀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걸 부끄럽다고 느끼는 게 부끄러운 거다. 그래서 난 당신이 부끄럽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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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기간 입니다, 두번째

from 시작/생각 2009. 11. 24. 19:16 by 케르베로스


Superior 8주차가 내일이면 끝나고 다음주가 되는 9주차 부터는 시험 러쉬 입니다.
즉 시험이 끝날 때까지 블로그를 쉽니다, 끝나고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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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문제

from 시작/생각 2009. 11. 19. 17:45 by 케르베로스
한국은 아이폰을 가지고 싶어서 한달에 한번
다음달에 발매 된다더라는 떡밥을 드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저 자태를 보자, 확실히 사과마크며 예쁘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야 모르고 관심도 없지만
애플은 우선 디자인에서 절반은 먹고 들어 가는 것 같다.

나는 호주에서 유학생활중이고 마음만 먹으면
아이폰을 쉽게 구해 쓸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구입한 핸드폰은 아이폰이 아닌


바로 노키아 E71.
이건 마치 첫 눈에 사랑에 빠졌다고 할까?
결국 소니 에릭슨 폰이 고장이 남과 동시에 구입을 했는데
만나는 한국 사람마다 왜 아이폰을 안 사고 이 폰을 샀냐고 묻는다.
나는 아이폰 보다 저 녀석이 몇 배는 더 마음에 들었던 것 뿐인데...

내가 하는 이야기 역시 결국 취향의 문제 일뿐이다.
아이폰을 사지 그랬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취향에
왈가왈부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조금 너무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아이폰, 아이폰 거리는 사람들이 싫다.

자신의 폰이 아이폰이라며 자랑을 하고 깔보는 태도.
아,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려고 한다.
어찌되었건 서로간의 취향은 존중하고 그래야 겠다.

추신.
1.쿼티 자판이 작아서 누르기 불편하겠다고
많이 물어보는데 전혀 안 그렇다.
술 잔뜩 마시고도 오타 하나 없이 문자 보낼 수 있다.

2. 그런데 내 폰은 알람시계 대용이잖아, 아마 안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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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from 시작/생각 2009. 11. 16. 22:01 by 케르베로스

슈페리어 기간이 끝나면 약 2개월의 홀리데이도 있고 해서 고민 끝에
한국에 돌아가 잠깐 쉬고 싶어서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는 알아서 하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셨다.
동생은 호주에 남아서 공부하는데 너 혼자 오는건 그렇지 않냐고 말씀하셨다.
게다가 한국 들어오면 비행기값을 제외하고도 100만원은 쓰니 가계에 부담이 가기도 하고 말이다.

잘 모르겠다. 확실히 굳이 꼭 들어가야 할 이유는 없다.
이유를 찾자면 수만가지 찾을 수야 있겠지만 설득력이 없는 이유는 의미 없지 않은가.
결국에는 니 알아서 하라는 말로 끝이 났고 나는 수요일 저녁에 다시 전화 한다고 했다.

아마 수요일 저녁에 전화해서도 별 이야기 못하고 가고 싶다고만 말하겠지만...
기분이 편하지도 좋지도 않다. 요새 들어서 일이 자꾸 꼬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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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밤의 꿈

from 시작/생각 2009. 11. 15. 19:08 by 케르베로스


언제부터인지 솔직하지 못한 채 내 연애에 대해서 두루뭉실하게 말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끝이 난 연애에 대해서 왈가왈부하고 싶지도 않았고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연애에 패널티로 적용될까봐 겁나는 마음도 있었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건 두서 없이 생각나는대로 조금 솔직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다.

11월 이지만 호주는 구름이 낀 무더운 여름이다. 이런 날은 왠지 그냥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어 진다. 물론 그 녀석과 처음 가진 데이트이자 마지막이었던 만남이 이런 꼭 비가 내릴 것 같은 여름 이었던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얼마 전부터 그 녀석과 다시 연락이 되고 이메일 주소만 알던 게 최근에는 핸드폰 번호도 주고 받았다는 것이다. 비록 나는 호주에 있어서 연락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무 소식도 듣지 못하고 답답해하던 예전보다야 많이 나아진 거 아닌가?

주변 사람들은 그 여자 애는 니가 좋아서 연락하는 게 아니라 그냥 좋은 오빠로서 연락하는 거다. 그러니 너무 빠지지 마라. 결국에는 너 혼자 또 상처 입을 거다라며 나에게 조언들을 해주었다. 호주에 있다보면 한국의 인연이 별 거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나 역시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와 있는 사람들과는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뭐 그건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주제와 크게 관련이 없으니 넘어가도록 하고 나 역시 녀석이 내가 다시 좋아져서 연락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좋은 오빠로서 나를 생각하고 연락하는 거겠지. 하지만 확실히 문제는 나다. 그 녀석과 사귈 때 그 녀석한테 "나는 너랑 헤어지면 다시 연애 못할 거 같아." 라는 이야기를 한 적 있는데 그 녀석은 그걸 어떻게 아냐? 라고 되 물었고 난 그냥 그런 기분이 든다고 대답했다. 논리적인 이해가 아닌 느낌이 그랬으니까 솔직한 대답 이었다.

말이 씨가 되는건지 확실히 호주에 와서 1년 동안 연애를 못했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었던 건 아니고 물론 다른 여자와 데이트도 하고 그랬는데 사실 외로워서 데이트 신청을 하는거지 내가 진심으로 상대여자들이 좋아서 데이트 신청을 한 건 아니라는 거다.

갑자기 커피가 마시고 싶어진 나는 아이스 모카를 사서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서 여전히 나를 들뜨게 하는 그 녀석을 생각했다. 화가 나다가 기쁘고 슬프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했다. 그 녀석이 나에게 쓴 편지가 하나 있는데 편지 끝에는 자기가 내 마지막이 되고 싶다고 적혀 있었다. 연애할 때 사랑한다, 헤어지지 말자, 난 너밖에 없다 등등 달콤한 말이야 넘쳐 나겠지. 그래 그 말들을 다 어떻게 믿겠어. 그런데 나는 슬프게도 정말 그 녀석이 내 마지막이 되어줬으면 좋겠다.

무슨 사춘기 소년이 적은 글 처럼 겁나게 유치해 보인다. 이걸 쓰고 있는 이유도 모르겠다. 다만 그냥 나중에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할까봐 기록해둔다. 그래, 나는 아직 그 녀석을 사랑한다. 그리고 앞으로 그 녀석을 사랑할 거 같다. 그 녀석의 미소도 아직 떠오르고 그 녀석의 목소리도 떠오르고 그 녀석의 향기도 떠오르고 추억은 왜곡되서 지워지지도 않고 이제는 그 녀석에게 나는 그저 좋은 오빠라고 해도 곧 한국에 가서 그 녀석을 만나서 좋은 오빠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게 되더라도 스스로에게는 솔직해지자. 뭐 나중 일은 아무도 모르잖아. 정말 내가 원하는 것 처럼 그 녀석도 다시 내가 좋아졌다던지...젠장, 더럽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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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from 시작/생각 2009. 11. 12. 21:42 by 케르베로스

한 여름에 감기라니...
신종플루가 아니길 바래야지.
그나저나 죽겠네,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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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조건

from 시작/생각 2009. 11. 12. 20:50 by 케르베로스

나는 부끄럽게도 말하는 게 서툴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고 그런 건 아니고 어떠한 내 생각을 타인에게 논리있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일을 귀찮아하며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머리 속에서는 수많은 사고가 일어나는데 결론은 항상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으니 답은 알 수 없다 라고 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면서 어떠한 일이나 인물에 대해서 단호히 단정 짓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데 그들 역시 어떠한 삶의 경험이나 반복된 교육의 결과로 그렇게 단정 짓는 것이겠지만 나는 그게 이해하기가 힘들고 미치도록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떠한 일이나 사람에 대해서 결론 내리기에는 보통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너무나도 부족한 경우가 많이 있다. 어떤 사건에 관련된 상황, 인물, 관계 등등 알아야 수많은 것들을 싸그리 무시하고 그냥 결론을 내리고 만다. 재미난 건 그 후 내 결론은 옳다 라고 생각해버리고 나중에 그 결론이 옳은지 옳지 않았는지 확인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조금 지난 일이긴 한데, 대화 도중 한 두 문장 정도 밖에 이야기 하지 않았음에도 이미 결론을 내리고 나를 비난하고 혐오스럽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사람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다. 난독증도 아니고 바로 코 앞에서 내 의견은 이래요 라고 말을 하고 있는 짧은 시간에 내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어떻게 너 그런 녀석이야? 라고 결론을 내렸을까? 내 입에서 나온 앞의 두 문장 정도가 자신의 의견과 대립한다고 해서 그 뒤의 문장들을 듣지도 않다니...

게다가 왜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더 이상 이야기할 게 없지 않느냐며 화를 냈다. 같이 있던 사람의 중재로 험악해지기 직전에 이야기는 끝이 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 사람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추가적인 설명을 안 해가지고 자신을 오해하게 만든 나한테 잘못이 있다고 했다. 나는 좋게 좋게 이야기를 끝내고 싶었고 제가 실수했네요 라고 대답하고 끝냈다.

이건 내가 논리적으로 말하는 게 서툴고를 떠나서 대화 자체가 성립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대화에는 화자와 청자가 있으면 최소한의 조건은 만족하는 거겠지만 그 외 최소한 상대의 대화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저 사람의 생각은 저렇구나 혹은 저 말의 의미는 어떻게 해석이 가능할까? 혹은 내가 너무 성급하게 결론 짓고 있는 건 아닌지 정도는 생각하는게 예의 아닌가?

글을 적다보니 결국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글을 적었다. 확실히 가슴 속에 담아둔 이야기는 있는데 실명과 사건을 거론하면 골치 아파서 애매하고 두루뭉실하게 이야기 했다. 앞으로는 타인과 만날 때는 지금보다 더 입을 무겁게 해야겠다. 괜히 말을 해봤자 내가 잘 못했다는 이야기나 들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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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의 한국인

from 시작/생각 2009. 11. 6. 20:38 by 케르베로스
비록 얼마 일하지 않고 일을 그만 두는 걸로 결정했지만 그래도 이 나라 와서 처음으로 일을 했고 나름 노동의 즐거움 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틀 전의 일로 인해서 짜증은 파도같이 밀려오고 다시는 한국 레스토랑에서는 일 안해라고 다짐하게 되었다.


일을 그만둔다고 말하고 빈둥거리던 나에게 사모님이 전화를 주셨다. 내용은 유니폼도 돌려 받아야 하고 일한 수당도 줄테니 이번주 수요일에 레스토랑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물론 유니폼은 씻어서 돌려줄 생각이었는데 꼴랑 2주 일하고 수당을 받을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치 못했기에 화들짝 놀라며 응? 이게 무슨 횡재야? 라며 신이 나 있었다. 그리고 수요일이 다가왔다.

만나기로 한 시간은 오후 7시. 6시 50분에 도착한 나는 혹시나 싶어서 레스토랑 앞에서 사모님을 찾아보고 사모님이 없다는 사실을 안 다음 20분간 서성거리다가 7시 10분에 사모님에게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 XX 인데요."
"아~ 예, XX씨."
"저 레스토랑 앞에 도착했는데 언제쯤 뵐 수 있을까요?"
"그래요? 지금 금방 내려갈게요."
"네."

내려온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금방이라고 했으니까 최소 30분 안에는 도착하겠지라 생각하며 사모님을 기다리는데 50분이 지난 오후 8시가 되어도 사모님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한번 더 전화를 해볼까? 생각하다가 잠깐 쉬러 나온 매니저 형님을 만났고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하니 매니저 형님이 말했다.

"XX야."
"네."
"그냥 유니폼 나한테 주고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고 가는게 좋겠다."
"네?"
"아마 안 올거야."
"아, 네."
"미안하다 XX야, 어지간하면 한국인이 하는 레스토랑에서는 일하지 마라."


대충 분위기 파악이 끝난 나는 유니폼을 매니저 형님에게 맡기고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갔다. 애초에 그냥 수당은 못 주겠다고 말해주었다면 나도 쿨하게 유니폼 돌려주고 그만 뒀을 건데 굳이 사람을 1시간이나 기다리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 내가 일하기 전에 7명이 트레이닝만 받고 그만둘 정도로 혼자서 하기에는 힘든 일을 한명에게 시키고 그 사람들 전부 이런 식으로 수당도 안 주고 더럽게 끝냈으니 우리 사장, 사모는 오래오래 장수하시겠다.

여기 중국인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 사람들은 중국인들을 무시하지만 자기들은 최소한 자기 나라 사람들을 등쳐먹고 살지는 않으니까 한국 사람들보다 나은거 아니냐고, 물론 모든 한국인들이 그런건 아니지만 호주에 온 지 2년이 거의 다 되가고 정말 한국인들에게 당하다보니 이제는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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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적 감각

from 시작/생각 2009. 11. 3. 20:31 by 케르베로스

사람에게는 많은 능력들이 있지만 나와 어울리지 않는 능력이 있다면 그건 단연코 동물적 감각이다.
예를 들자면 수학적인 이야기를 꺼내면 복잡해지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친구와의 가벼운 도박이라던지


도시에서 길 찾기, 복잡한 대형 건물 안에서의 길 찾기 등이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굳이 이런 동물적 감각이 없어도 기계의 힘을 빌려서 해결할 수 있다지만
간혹 같이 어딘가를 찾아 가는데 마치 예전에 한번 와봤다는 식으로 단번에 길을
찾는 모습을 보면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나이를 먹다보면 늘어나는 동물적 감각이 있으니
안 좋은 일이 생길거 같은 기분이라는 거다.


오늘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기분이 묘했다.
왠지 오늘 하루 안 좋은 일이 최소한 하나라도 생기겠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쉐프 모자를 안 챙겨서 지각 위기.
이정도로 끝날 거 같은 기분이 아니었기에 긴장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손을 베었다.

그래 이거다. 이걸 예견하거다 라고 생각하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수업을 다 마치고 보니까 내 레시피 북이 없어졌다.


응? 툴박스 위에 올려놓았던 내 레시피 북이 어디 갔지?
라며 사방팔방 돌아다녔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
속으로 이 일이 터질려고 아침에 기분이 묘했나보다 라면서
레시피 북을 찾으려고 사방팔방을 뛰어다녀야만 했다.

하루의 시작이 묘하면 반드시 그 날 무슨 일이 터진다는 거
알고보면 참 무서운 일이다.

추신.
결국 오늘 친구가 자신이 가져갔다며 돌려줬다.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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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5주차 잡담

from 시작/생각 2009. 10. 28. 21:09 by 케르베로스
1.
취직했다만 이번주까지만 하고 그만 둘것 같다.
이런저런 문제점 다 무시하고라도

오전 11시 일 시작
다음날 새벽 1시 일 마침, 새벽 5시 기상, 학교 가기
오전 7시 학교 수업 시작, 오후 2시 학교 수업 마침
거의 반나절 내내 잠도 못 자고 서 있어야 하는
일정을 몸이 따라오지 못한다.

돈은 모으겠지만 몸은 죽어나가고 공부도 안되는 상황이
이건 좀 뭔가 아니지 않나 싶었다.

2.
할로윈에다가 크리스마스와 새해라는
거대 축제 기간이 다가오자 호주는 술렁거린다.
다만 나는 셋 다 별로 와닿지 않는다는 게 문제.

할로윈은 아이들 혹은 클럽의 축제.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는 눈이 없어서 섭섭
2010년 새해가 와도 나한테 달라지는 건 없잖아.

이번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나 주위 사람들에게 돌려야지.

3.
이번 학교 슈페리어 코스가 12월달에 끝나는 데
한국에 들어가고 싶다. 정말로...

4.
인터미디어 코스는 베이직 코스 때보다 성적이 올랐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봐도 나보다 실력이 좋은 사람이
점수가 낮게 나왔는데
맛있는 요리의 기준이라는 게 원래 주관적이다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 구나 싶다. 참 우습다.

5.
학교에서 레스토랑 실습을 하고 있는데
첫 주는 앙뜨레 파트를 다음 주는 디저트 파트를 했는데
어쩌다보니 둘 다 내가 쉐프 데 파티를 했고
보스 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렇게까지 팀원들을 갈구지 않았는데 왜 보스라고 불리지?

6.
재수 없지만 똑똑한 녀석 = 착하지만 멍청한 녀석
그냥 재수 없고 멍청한 녀석이 최고다.

호주 와서 가장 분노로 가득 찼던 것 같다.
그 새끼랑은 절대 같은 파트를 담당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


햐~ 사는 게 힘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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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끝났습니다, 첫번째

from 시작/생각 2009. 9. 20. 23:03 by 케르베로스
시험이 끝나고 이번 주는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고
간만에 인터넷도 하면서 재미난 일이라도 있었나라며 놀고
하고 싶었던 PSP 게임도 했습니다.

네, 더 피곤합니다.

엄청나게 피곤한데 내일 학교 가야하다니...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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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from 시작/생각 2009. 9. 9. 21:18 by 케르베로스
0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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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기간 입니다, 첫번째

from 시작/생각 2009. 9. 2. 00:26 by 케르베로스

아~ 귀찮아.


Intermediate Cuisine 코스 7주차 완료.
9주 차에 있을 시험을 대비해서 블로그 쉽니다.

어차피 오는 사람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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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from 시작/생각 2009. 8. 23. 14:44 by 케르베로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의식주는 돈만 있으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어이 없는 녀석이지만 가난한 유학생들에게는 꽤나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리고 어제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이사를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5명 정도는 재울 수 있을 정도의 넓은 방이 나온다. 사진은 동생이 찍었고 레시피를 보며 워크 플로우를 열심히 짜고 있는 모델은 바로 나.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2인실답게 2명이서 쓸 수 있는 책상이 나온다. 하지만 과연 책상에서 공부할 날은 몇 일이나 될 것인가!


그런데 왜 당신은 침대에서 공부하고 있는거냐! 라고 물으면 침대가 더 편하니까! 라고 대답하고 도망 가겠다. 나는 오랜 버릇으로 인해서 누워서 공부한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좌측에 공부하느라 정신 없는 짐승은 무시하고 저렇게 책상 옆에 옷장이 있고 전신 거울도 있다. 어제 이사해서 오른쪽편에 보이듯 아직 짐정리가 다 끝나지는 않았다.


베란다가 바로 붙어 있어서 편한데 저렇게 빨래를 말리고 툴킷에서 칼과 도구도 태양을 보게 해줄 수 있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사실 그렇게 멋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살만한 집 아니한가? 자! 그럼 다시 열심히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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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황금기

from 시작/생각 2009. 8. 23. 14:21 by 케르베로스

고기 먹으로 가자, 고기

보통 한가한 주말에는 동생이 아는 형(엽)과 나그리고 동생 이렇게 셋이서 시간을 보낸다. 셋 다 술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주로 셋이서 영화를 보거나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는데 이번 주에도 어김 없이 셋이서 밥을 먹으러 갔다. 거의 매주 만나다 보니 요리 관련 이야기(셋 다 요리사)를 제외하고는 참 할 이야기가 없는 편인데 그나마 이번에는 할 이야기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헌팅!


사냥? 그거 말고!

엽이 형이 최근에 한국 식품점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여자에게 헌팅을 했고 그 결과를 오늘 이야기 해주기로 한 것이었다. 뭐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었지만 정리하자면 폰번호를 따고 통화를 하고 같이 커피도 마셨지만 여자 쪽은 연애를 할 생각이 없다는 것. 우리 셋은 왜 이렇게 연애하기가 힘드냐며 푸념을 하다가 자신의 연애의 황금기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나는 호주 오기 직전이 연애의 황금기지 않았을까? 생각했고 엽이 형은 호주오고 얼마 안되서라고 했다. 둘다 그때 나이는 24살.

그때가 정말 좋았다며 추억에 빠져 있는데 가만히 보니까 내 동생은 아직 22살. 곧 연애의 황금기가 오겠구나 라며 나와 엽이 형은 부러워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24살,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매일 밤새 통화하고도 녀석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고 6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가서 만난 첫 날을 잊을 수 없는 첫사랑보다 더 가슴에 남는 연애의 황금기였던 시절이 그립다.


당신의 연애의 황금기는 언제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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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만 안녕

from 시작/생각 2009. 8. 12. 11:42 by 케르베로스
나도 어리다면 어린 나이었지만 녀석은 나보다 한참 더 어린 나이었기에 별로 진지하게 빠질 생각은 없었다. 결국 나중에는 깊게 빠져서 허우적거리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하지만 예상치도 못한 갑작스런 이별통보와 녀석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블로그도 그만두고 연락처도 바꾸면서 나를 피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다. 정말 좋았었는데 뭐가 문제였는지 내가 둔해서 혹은 내가 바보라서 그런건지 사실 아직도 헤어진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그리고 헤어진지 1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가끔 녀석이 생각 나는 거 보면 좋아하기는 많이 좋아했나보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녀석의 새 블로그를 찾았고 무심코 들어가버렸다. 블로그 내용을 읽어볼까 하다가 이제와서 무슨 미련이 있다고 읽어 라며 안부 게시판에 우연히 들어온거고 신경 쓰지 말라고(네이버 블로그는 방문기록이 남으니까) 적고 나왔다.

화가 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흐지부지 헤어진거다 보니(한동안 연락하지 말자가 그대로 연락 두절로 이어졌었다.) 애매하다 싶었는데 뭐랄까?

영화로 치면 엔딩 크레딧 올라가는 걸 보는 것 같고 소설로 치면 완결 이라고 적힌 두 글자를 읽은 느낌이다. 이제서야 끝났구나 연애기간 1년에 혼자만의 시간 1년을 보내고 나서야 그래 끝이구나 라는 슬픈 감정과 안도의 감정이 동시에 든다. 그래 그래 끝이구나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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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주차 잡담

from 시작/생각 2009. 8. 8. 23:50 by 케르베로스

1.

노트북으로 음악을 들으며 레시피 공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음악이 나오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노트북이 다운 되어 있다.

이 노트북은 한달에 한번정도 이렇기 때문에 올게 왔구나 라고 생각 했지만

아무것도 백업하지 못하고 포맷해야 하기에 너무 슬프다.

수리 할 때까지 블로그질도 역시 못하게 되었음.


2.

봄이라 그런지 주변에서 연애를 많이들 시작하는데

나는 참 언제나 푸른 소나무처럼 한결같이 연애 못하고 있다.

외롭고 슬프고 부럽다.


3.

일해야 하는데 텍스 넘버 파일이 안 온다.

30일 거의 다 지난 것 같은데...

젠장!


4.

친동생과 아는 동생과 하나가 되어

우리 격주에 한 번씩 밤을 새며 온라인 게임을 하자

라며 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금요일 밤!

와우를 하려고 했더니 본인 인증이라는 벽에 걸려서 못했다.

라테일을 하려고 했더니 렉이라는 벽에 걸려서 못했다.

던파를 하려고 했더니 해킹이라는 벽에 걸려서 못했다.

그라나도 에스파다를 하려고 했더니 비번을 까먹어서 못했다.


우리 워크 유즈맵이라고 하자! 라고

다시 의기투합하고 나서 들어온 인도쪽 피시방 손님의

발냄새에 결국 모든걸 포기하고 집으로 귀가.


유학생이 게임을 하려고 하면

하늘이 벌을 내리는 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국적의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발냄새 진짜...



백업도 못하고 연애도 못하고

쓸모 없는 인생이라며 엉엉 울고 싶은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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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폭스 10억 다운로드 달성

from 시작/생각 2009. 8. 1. 11:37 by 케르베로스

파이어폭스에 대해서 2.X 때부터 관심은 있었지만 사실 파이어폭스를 제대로 사용한 건 3.0 이 되고 나서였다. 사실 한국에서는 IE를 안 쓰면 힘든 경우가 많아서 어쩔수 없었지만 호주로 유학을 오고나서는 전혀 불편함 없이 파폭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IE보다 빠른 속도, 다양한 부가기능 이 장점인 파폭이 이대로 꾸준히 발전해서 많은 이용자들에게 사랑을 받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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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from 시작/생각 2009. 7. 30. 01:49 by 케르베로스
영어 스쿨에 다닐 때 일인데, 집에서 가장 편한 공간이 어디인가? 라는 질문이 나오자 아무래도 자기 방이 가장 편하겠지라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놀랍게도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키친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키친의 의미를 그저 요리를 하는 공간 정도로만 생각했었지 편한 공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부엌은 라면을 끓이는 곳 아닌가요?

나는 오랜 시간을 마루와 마당이 있는 한옥의 양식을 따른 집에서 살았었다. 그래서인지 집에서 가장 편안 공간 이라고 하면 나는 마루와 마당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호주로 유학와서 아니 그전에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마루와 마당은 베란다와 정원 같은 지극히 현대적이며 서양적인 것으로 대체 되었지만 서양 문화의 사람들이 키친을 집에서 가장 편한 공간으로 고르는 것처럼 나에게는 마루와 마당이 그런 공간이었다.

초봄, 눈 대신 내리던 비가 좋았다.

마루에서 빗방울이 처마에서 떨어지는 것을 구경했던 기억, 마당에서 친척들과 옥수수를 삶아 먹었던 기억, 아버지와 마당 구석에 있던 감나무의 감을 따던 기억 그리고 마루에 나가 마당에 가득 쌓인 눈 속에서 뛰어 놀던 강아지를 보았던 이런 기억들이 마루와 마당은 가장 편한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 같다. 하지만 추억만이 마루나 마당을 편하게 느끼게 했다고 보기에는 뭔가가 부족했다.

영어 스쿨이 끝나고 르 꼬르동 블루 에서 프랑스 요리를 배우면서 키친에서의 생활 시간이 한국에서와 달리 엄청나게 늘어나게 되었고 다시 키친에 대해서 생각해봤지만 역시나 평생의 직업 공간이 될 곳에서 편안함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르 꼬르동 블루의 키친은 전문가 양성을 위한 목적 때문에 가끔은 내가 닭의 뼈와 살을 분리하고 있을 뿐이지 칼을 든 전사와 다른게 뭔가 싶을 때도 있다.

이런 평화로운 분위기의 부엌은 절대 아니다.

그러던 중 항상 집까지 나를 태워주는 이스라엘 출신의 친구와 이 이야기를 나누게 생겼다. 이스라엘 친구는 사람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무언가 일이 생기고 그게 추억이 되고 가슴에 남는 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서양권에서는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자기 집으로 식사 초대를 많이 한다. 하지만 한국은(최소한 우리 집은) 식사보다는 가벼운 차나 커피 혹은 다른 음료나 다과를 거실 혹은 마루에서 먹는 편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어찌보면 즐겁고 편한 일이 아닐까? 내가 타인을 만났던 마루를 편하게 생각했던 것처럼 외국 친구들이 타인을 만났던 키친을 편하게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예전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가 너무 힘들어서 무인도에서 혼자 살고 싶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용기를 조금 내서 타인을 나의 키친으로 초대해야겠다. 그리고 나 또한 남들처럼 키친이 편하다고 느낄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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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from 시작/생각 2009. 7. 26. 00:15 by 케르베로스
12月

사랑받고 싶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모르겠다.

가장 이상적인 해결 방법,더이상 고민하지 말고 이걸로 끝.

누군가에게 기억되길 바라며...



10月

괴로웠던 시간보다 행복했던 시간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9月

무지는 죄가 아니지만, 가벼운 앎으로 무지한 자를 선동하는 것은 죄다.

선택은, 가능한 몇가지 중 하나를 택하거나 완전히 거부하는 행위.



8月

너한테는, 좋은 사람이 아닌 필요한 사람이고 싶다.

거짓이 진실보다 많을 나이.



7月


자꾸 어긋난다.

좋게 말해서 편한 사람, 나쁘게 말해서 만만한 사람?

알수록 손해다, 모르고 있으면 손해보는지도 모른다.



6月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서 누군가를 만나는 게 겁난다.

미래를 꿈꾸며 살았고, 지금은 그때를 그리며 살고 있다.

그동안 나는 뭐한거지?

아름답게 죽을 필요는 없다, 대신 죽어야 할 때 죽어야 한다.



4月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쉽고,
그러나 헤쳐나갈 자신이 없다.

아무리 가까이 다가서도
너와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거 같다.

사람들은
선물을 받지 못하면 속상해 하고,
선물을 받으면 당연하게 여긴다.

달리고 또 달리면 벗어날 수 있을까?

나이를 먹는 것 자체는 그다지 겁나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그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떤 한 시기에 달성되어야만 할 것이
달성되지 못한 채 그 시기가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니다.

나는 정말 알알하게
내 온몸으로 느낄수 있는 생의 시간을
자신의 손으로 쥐고 싶다.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가고싶다.



3月

기쁨과 슬픔, 육군 훈련소 29연대 3교육대대 12중대 1소대 33번 훈련병 김고훈.

이렇게 여유롭게 주말을 보내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내가 어리고 자유로웠을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을 꿈꿨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더 현명해지면서 
난 세상이 변하지 않을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나가는 이야기입니다만...

새로운 사람은 귀찮아, 다시 날 설명해야 하잖아

자신감은 좀더 허리를 펴고 고개를 쳐들고 땅과 멀어져서 걷기.
높은 곳의 공기를 마시는 것.

이렇게 좋은날에 나는 피곤하다.



1月

2006년의 첫번째 하루.

잘되면 자기 때문이고 못되면 내 때문이란다.

너무 아파 말하지 못한 이야기.

나한테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걸까?

차가운 바람이 부는 날의 거리.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색 풍경.

뜻하지 않게 찾아온 행운은 곧 사라진다.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해서 적이 될 필요는 없다.

내가 널 좋아하듯 너도 날 좋아해주는 게 사랑.

사람은 거짓말쟁이다.

솔직하게 말하기보다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일이 더 어렵다.

들뜬 기분으로 거리를 걸어보다.

겨울비가 너무 좋다.

너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주인을 공격한 개는 반드시 죽는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것은 한가지를 선택한 것이다.

강한 사람은 감정을 억누르는 자이다.

어른들의 세상, 현금과 필요성 그리고 배신.

그냥, 이유 따위는 상관 없잖아.

끝이 있다는것만큼 쉬운 일은 없다.

모든 게 귀찮아.

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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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from 시작/생각 2009. 7. 26. 00:07 by 케르베로스
12月

처음부터 다시 걷기 시작했다.

꿈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다.

하늘보다 많이 아는 자는 없다.

단도직입 적인 생활은 힘들다.

하루가 잘 간다.

인연이 아닌 사람을 좋아하는 일.

2005년의 마지막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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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인 행동에 대한 의문

from 시작/생각 2009. 7. 7. 23:19 by 케르베로스
운동을 하기 전에 운동 기구와 체육복부터 갖추는 사람이 있다.
공부를 하기 전에 학용품부터 사는 사람이 있다.
시험 기간에 서랍부터 정리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내 짧은 경험으로 이런 경우에 결심은 오래가지 못하고,
남이 같은 행동을 할 때 자신의 과거를 끄집어내며 말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말하니까 난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데, 사실 전형적으로 그런 유형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고 자신을 제어하는 것은 이성적인 행동이다.
나도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왔고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렇게 조절하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나는
사랑하면서 욕망에 솔직하고 감성적인 나를 억누르려하는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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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from 시작/생각 2009. 7. 7. 23:19 by 케르베로스
거리를 거닐다 보면 웃는 사람을 발견하기가 힘들다. 모두들 힘에 겨워 살아가고있다. 초등학교 1학년도, 중학생도,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어른이되도, 중년이되도, 노년이 되도 우울은 떨쳐내기가 힘들다. 이런 우울은 대부분 사회와 개인의 갈등에서 오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우울증을 받아들일정도로 성숙되지 않은것같다. 우울증때문에 상담을 갔다왔다고 말하면 거의 다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니까 말이다. 정신병원은 말할것도 없고,

이런 사회의 모습은 인터넷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못믿으시겠다면 지금 당장 아무 커뮤니티에 가서 검색창에 자살을 쳐보시기 바란다. 수백개의 글을 넘어 수천개의 글이 나올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말한다. "자살할 용기로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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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자살할 용기로 살라는 말이 위로가 될까? 보통 자살을 진지하게 꿈꾸는 사람들은 이미 삶에 대한 미련이 아예 없는 사람들이다. 외출을 해도 여기서 죽을까 저기서 죽을까, 지금 죽을까 다음에 죽을까, 지하철에서 투신할까 버스에 달려들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것이다. 그들에게 삶은 더이상 가치가 없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자살할 용기로 사세요'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분명 '죽는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사람들에게 자살이란 '용기'를 내서 하는 일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삶에서 도망칠수있는 마지막 방법으로 느껴지는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 얘기와 더불어 단골로 나오는 이런식의 리플들이 있다.
'그런거 나중에 되면 아무일도 아니에요. 전 님보다 더 오래살았는데 이런 고통도 있고 어쩌고저쩌고~' 라면서 오히려 자기의 힘든점을 털어놓음으로써 타인의 고통을 깍아내리는 사람이 있다. 물론 이건 어느정도 맞다. 초등학교보다 중학교가 힘들고 고등학교가 중학교보다 힘들고 대학생활은 고등학교 생활보다 힘들고 대학생활보다 직장생활이 더 힘들다는건 어느정도 보편화된 사실이니 말이다.(내가 쓰기도 힘들다.)

하지만 이게 그 당사자에겐 무슨 위로가 될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고통보다 더 힘든 고통이 기다린다는걸 알라는 말일까? 이렇게 따지다보면 미취학아동-초등학생-중학생-고등학생-(n수생)-대학생-직장인-대한민국 빈곤층-아랍권 여성들-아프리카 빈곤층-인도의 최하위 빈곤층, 이렇게 누가누가 힘든가 경쟁을 하자는것일까?(사실 이런 공식도 성립되지 않는다. 일하지 않고도 살아갈수 있는 재정적 능력을 가진 대학생과, 부모님 두분을 잃고 동생을 보살펴야하는 초등학생도 있으니) 아니면 당신보다 못한 사람도 사는데 왜 당신은 그깟꺼에 힘들어 하냐고 알려주려고? 그 사람의 고통이 얼마나 한심한것인지 인지해주려고? 그리고 그 고민을 해결하지못해 안고서 끙끙거리고 있는 사람은 더 한심하다는것을 말해주려고?

누구나 다 지나간 일은 힘들지 않아보인다. 하지만 그런식으로 고통을 '과거'로 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모든 고통은 '현재진행형'으로 봐야만 한다. 내가 초등학교 때 가나다라 발음을 못한 사람은 방과후까지 남아 제대로 할때까지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나는 그때 갸 라던지 냐 등을 발음못했다. '할 때까지 집에 못간다'라는 선생님의 말과, 학생들이 하나 둘씩 떠나가 나 혼자 남은 교실, 그리고 창밖으로 점점 져가는 해, 그리고 여전히 발음되지 않는 냐. 난 그때 처음으로 집이 아닌 밖에서 울어봤다. 뒤늦게 검사하러 오신 선생님은 당황하시며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셨다. 지금 친구들에게 말하면 다들 'ㅋㅋㅋ'거릴 일이고, 내가 봐도 웃긴 일이다. 하지만 그때 당시의 내가 느꼈던 두려움은??

소위 이런말이 있다. '진짜 죽을 사람은 저렇게 행동안해요.' 도대체 왜 타인이 자신의 기준대로 무게를 재고 '저건 가짜 우울증' 이건 '진짜 우울증' 이라고 분류하는가? 자신의 우울은 진짜 우울증이고 남들이 우울한것은 엄살이라고 보는 잣대는 어디서 생겨났는가? 남의 우울은 허세이며 생색이고, 자신의 우울은 사색이며 진정한 우울증인가? 우울은 빙하와도 같아서 아주 조그마해보여도 속에는 얼마나 큰 우울이 있는지 타인은 잘알수가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것이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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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사람들은 누구나 다 고통스러운 일을 한 개 이상씩 안고 산다. 지나가는 초등학생에게 잡고 물어봐도 엄마의 구박이라던가 학교에서의 삼각관계, 외모문제, 친구관계, 무서운 선생님, 의지와는 상관없는 수많은 학원 등 수십가지의 고민거리가 나올 것 이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고민들이 해결점과 상담할 사람을 찾지못해 오래동안 곪게되면 그것은 우울의 눈덩이가 되어 걷잡을수 없이 커지게 된다. 그렇게 생겨나는 우울이 자신의 기준에서 가벼운지 무거운지는 중요하지 않다. 제일 중요한것은 가볍든 무겁든간에 한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 고통을 함께 들어주는 것이다.

누군가가 힘겨워 할때 "나는 이런것도 이겨냈는데 너는 그런것도 못이겨내니? 너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야! 난 더 힘들어! 세상은 원래 다 힘들어! 부모님 생각은 안하니? 그런 용기로 살지그래?" 라는 말은 이제 고이고이 접어두고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무엇이 그렇게 힘들게하는지 조용히 다독이며 물어봐주자. 해결해준다면 더할나위없이 좋겠지만 설사 우리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일이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들은 한 사람이나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동감해주고, 함께 해준다는 사실에도 크게 고마워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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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과 추함

from 시작/생각 2009. 7. 7. 23:17 by 케르베로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름다움과 추함을
빛과 그림자에 비교하며,
완전하고 절대적인 추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추하다는 것은
결핍이나 부분의 개념이라고 했는데,
외모에서라면 부족함 뿐만 아니라 지나친 것도
아름다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난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면 현대적인 기준에서
쌍꺼풀이 없거나, 코가 낮다거나,
가슴이 작다거나, 다리가 짧다거나
볼이 도드라지게 들어간 것은
결핍에서 오는 추한 외모이다.

하지만 과잉도 만만치 않아서
얼굴이 크다든가,
눈이 졸려보일 정도로 쌍꺼풀이 크다든가,
코가 크고 중간이 솟았다든가,
몸에 살이 붙어서 선이 흐트러지는 것도
추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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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from 시작/생각 2009. 7. 7. 23:14 by 케르베로스
사실 내 속의 열정이 완전 연소가 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쳐버렸다.

차라리 에너지가 수평에 가까운
원만한 곡선을 그리니 평온함마저 느끼고 있다.

스물세살에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직전의 연애가 힘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지금까지 사랑이라고 믿어왔던 관계 속에서
가장 나를 행복에 물들게 해준 사람이었다.

깃털로 감싸인 기분이란 어떤 것인지,
제대로 된 애정이 사람에게 어떤 긍정적 느낌을 주는 것인지 배웠다.
그러니까 여기서 탁 끊어지고 만 것을 보면,
여기까지가 내 마지노선이 아니었을까.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그러니까 누군가 이해가 가지 않는 미친 사랑을 하는 것도
소울 메이트를 만났다거나 그 사람이 워낙 잘나서가 아니라

일상이 권태롭고 추구하고자하는 목표가 없어
잉여 에너지가 남아돌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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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활

from 시작/생각 2009. 7. 7. 23:13 by 케르베로스
남 녀 차이가 없어지는 듯 하다. 여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생긴 페미니즘은 이제 여성을 남성으로 만들려고 한다. 여성과 남성 사이엔 엄연한 차이가 있으나 그들은 그것을 개성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틀림으로 받아들인다. 틀리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망치로 때려박고, 끌로 깎아내 남자와 같은 역할을 하도록 만들려는 것 같다.

1. 이프측은 “역사적 인물로서 신사임당은 유교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이상적 여성의 전형으로 자기 자신이기보다는 이율곡의 어머니요, 이원수의 아내로서 인정받고 있다”며 “‘어머니?아내’만이 보편적 여성상으로 자리 잡는 것에 반대한다”고 설명했다.

또 “훌륭한 현모양처와 예술적 재능까지 성공적으로 펼친 것으로 해석되고 있는 신사임당이 화폐인물로 선정될 경우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전형적 이중노동 노동구조를 정당화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2. 이프는 성명에서 "단순히 여성 한 명을 화폐에 넣는 것이 의의가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여성이냐가 중요하다"면서 "부계혈통의 순응적 계승자가 아니라 주체적인 개인이고자 하는 현대 여성들을 격려하고 긍정적 역할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여성인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렇다고들 한다. 어머니와 아내가 보편적 여성상으로 자리잡으면 안되는걸까. 난 어머니와 아내는 당연히 사회 전반적으로 그 역할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똑바로 선 어머니가 있어야 자식이 컴플렉스없이 제대로 클 수 있고, 가정적인 아내가 있어야 남편 또한 더 나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입신양명이고 나발이 아니라 돈버는 일에만 더 집중할 수 있고, 자식이 구강기 때 무관심에 지쳐해 애정결핍이 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가정주부가 되어 좋은 어머니, 좋은 아내가 되는 것은 부정적 역할모델이란 말인가.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전형적 이중노동 노동구조가 부장하다고 생각하면 합리적인 그녀들은 사회생활하는 동시에 가정생활은 포기할텐데 그게 과연 어머니와 아내를 내칠정도로 긍정적 역할모델이란 말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아니어야만 하다. 어머니란 존재는 가정에서 꼭 필요한 역할이고, 사회적으로 존중되어야 할 직업이지 부정적이라고 화폐에도 못나오게 될 그런걸로 비하해선 안된다. 또한 남성들과 대비해 개성적일 만큼 두드러진 여성들의 가정적인 따뜻함을 전적으로 사용하기엔 집 안 만큼 효과적인 곳도 없다. 차이점을 다른 것으로 받아들여 활용해야지, 틀린 것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활용하기도 힘든 사회로 여성들을 내모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물론 가정주부는 여성들의 선택이어야 한다. 사회 생활을 하고 싶으면 자유롭게 그녀의 역량을 펼칠 수 있을만큼 사회는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이 페미니즘의 역할이다. 여성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되려 남성들에게 어울리는 진취적, 비타협적인 것을 여성들에게 적용시키려 한다.

이게 좋은 일일까. 나는 사회가 여성이 할 수 밖에 없는 어머니라는 역할에 힘을 실어줬으면 좋겠다. 또한 어머니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페미니스트들은 힘써야 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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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화음

from 시작/생각 2009. 7. 7. 23:12 by 케르베로스
다른 도시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살던 곳에서는 중학교에서 한해에
한번 정도 합창 대회가 열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지정곡이 있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고,
등수를 매겨서 상을 주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었다.

그러나 전교생이 의무적으로 참가하는 것은 다르지 않았고,
방과 후에 남아서 단체로 연습하는 것이 달가운 일은 아니다.
집에 가서 가방 던져놓고 학원 가기 전에 잠깐 눈 붙이고 싶기도 하고,
한번 본 영화를 다시 보기도 싫은데
같은 노래를 한달 가까이 연습하려니 넌더리가 날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한둘이 학원에 가고 병원에 가고 제사에 간다며
개인 사정으로 빠지다보면
결국 여럿이 빠지게 되고 때로는 연습이 취소되기도 한다.
그 소식이 알려지면 담임 선생님이 조회 시간에 호통을 치셔서
아침부터 유쾌하지 않은 시작을 하기도 하고,
너희들 너무한다며 마음 약한 반장이 울어버리기도 했다.
단체라는 이름이 붙은 것 중에서
흡족했던 경험이 드물지만 기합과 연습은 더욱 그랬다.

그러나 막상 합창 대회가 시작되고
무대에 올라가서 그동안 연습했던 것을 발휘하노라면 느끼게 된다.
합창이란 얼마나 즐거운 공동체의 산물인가를 말이다.
알토, 메조 소프라노, 소프라노로 나뉘어진
스물 셋의 목소리가 하나로 모인다.

사춘기를 갓 벗어난 소녀들의 목소리는
동이 텄지만 아직 해가 보이지 않은 하늘에
수줍게 걸려있는 초승달처럼 산뜻하였다.
누가 누구의 목소리인지 구분할 수 없지만,
이름 모를 잡초라도 괜찮다 싶을 정도로
여럿이서 하나의 화음을 이룬다는 것은 멋진 일이었다.

내가 개떡처럼 말을 해도 상대방이 찰떡처럼 알아들을 때,
내 방식대로의 농담을 상대방이 헤아려 멋지게 맞받아칠 때,
끝이 나지 않는 실뜨기를 빠른 속도로 할 때,
배드민턴의 셔틀콕이 쉴 새 없이 날아다닐 때,
우주는 아름다운 조화가 있는 전체라는 것을 느낀다.

짝사랑이라는 단어는 오미자처럼 달고 시고 쓰고 짜고 맵다.
그렇다고 맛이 없는 것은 아니며,
나는 오미자 달인 물을 좋아하는 편이다.

짝사랑은 상대방과 합의가 없어도 혼자 시작할 수 있으며,
물리적 시간과 금전이 비교적 크게 들지 않고,
자존심 싸움을 벌이거나 스킨쉽 진도를 두고 타협할 일도 없다.
물론 상대가 보인 작은 반응을 해석하느라 시간 다 잡아먹고,
꽃을 들고 그가 나를 좋아할까요 싫어할까요를 반복하며
잎사귀 떼다가 구제할 수 없는 자기 연민을 느낄 수도 있으며,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상대방을 원망하면서 음유시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시 짝사랑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본체와 모니터는 어찌 할 수 없다지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환상을 덧씌울 수 있으며,
가상 시뮬레이션으로 이상적 연애를 체험하는 것이 가능하며,
마음 내키는대로 그만 둘 수도 있다.

근데 나 짝사랑을 해본 게 언제던가.
아파서 말도 못할 정도의 짝사랑을 경험하고 난 이후
짝사랑이란 감정의 소모일 뿐이라는 생각을 굳혔고,
이성적인 호감이 교환되고 있다는 확신을 느끼기 전에는 한 발자국도 내딛지 않았다.

만남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집착, 애증, 질투, 허세를
세련되게 숨기는 방법을 터득하고 표현의 기교도 늘어가지만
방어 기제는 강해져서 조금만 상대방이 나에게
상처줄 기미를 보이면 방화벽을 둘러버리는 것이다.

타인은 내가 아니고, 내가 아니면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가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중심부에 닿을 수 없고 온전히 알 수 없다고 해도,
당신은 여전히 내 탐구의 대상이며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목표이다.
다장조가 아니면 악보를 읽을 수 없는 나라도 음을 더듬어가며 반복하다보면
언젠가 당신과 멋진 화음을 맞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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