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후드 - 현실의 현실

from 단편 2009. 7. 13. 18:59 by 케르베로스


나이트 후드 - 현실의 현실

전선을 보호하기 위해 가지가 잘린 가로수들, 놀이동산도 아닌데 롯데 백화점 옆에 서 있는 회전 관람차,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내가 너보다 10년은 먼저 세워졌다고 말하는 듯 한 현대 백화점. 이곳은 하나도 변한 게 없는 1 년 만에 돌아온 내 고향 이었다. 한 달 후에는 다시 떠나야 하는 고향이지만 타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친숙한 풍경이며 향기가 나를 들뜨게 했다.

“어디 가니?”
“아, 잠깐 산책 좀 하고 올게.”
“아직 추우니까 옷 따뜻하게 입고 나가렴.”
“응.”

유학생활을 하면서 생긴 취미가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사진이었다. 전문가들처럼 비싼 카메라를 쓰는 건 아니다. 그저 싸구려 똑딱이 카메라로 이곳저곳을 찍는 것이 다지만 그래도 스스로 결과물에 만족하고 있었기에 오늘도 거리를 돌아다니며 고향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아파트에 붙어있는 자그마한 비둘기 공원, 방학 중이라 텅 빈 근처 대현 중학교의 운동장, 2년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지금은 내 공익후배들이 일하고 있는 울산 남구청. 모두 잊지 않기 위해 하나하나 사진으로 남겼다.

“그래서 전에 이야기했던 그 중국 여자애랑은 잘 되었니?”
“만나기는 가끔 만나는 데 친구 이상은 힘들 거 같아. 사진 있는데 보여줄까?”
“어서 보여줘!”

언제나 소녀 같은 우리 엄마는 역시나 사랑 이야기에 소녀 같은 눈빛을 빛내며 대답했고 나는 멋쩍게 웃으며 카메라를 꺼내서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는 왜 카메라를 줘? 라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씨익 웃으며 그 질문에 답했다.

“한 번 찾아봐. 찾으면서 외국은 어떤 동네인지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보는 것도 좋잖아.”

그렇게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던 엄마와 나는 이상한 사진 한 장에서 대화가 끊어졌다. 고양이 한 마리가 어딘가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사진이었는데 그 고양이의 눈빛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갑자기 엄마는 멍하니 있는 내 등을 두드리더니 감동했다는 듯 물어왔다.

“어머~ 이 사진 좋다. 여기서 찍은 거니?”
“아마도 사진 순서로 봐서는 여기 와서 찍은 걸 거야.”

그렇게 대답했지만 나는 고양이 사진을 찍은 기억이 전혀 없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게다가 엄마의 질문 공세에 길게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날 밤 중앙시장의 한 통닭집에서 공익후배들을 만난 나는 이 이야기를 했고 후배들은 흥미로워 하며 사진을 보여 달라고 했다.

“선배, 여기 배경으로 봐서 선배 아파트 후문 근처 벚꽃 나무 있는 곳 같은데요? 막내야, 내가 저번에 제대한 선배 한 분 여기에 산다고 이야기해줬을 때 이 벚꽃 나무 가리키면서 이야기 했지?”
“어라? 그러고 보니 그렇지 말입니다. 담벼락의 문양이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었지 말입니다.”
“선배, 벌써 치매 오고 그래요? 선배 아파트 근처면 당연히 선배가 찍었겠죠.”
“그런가?”

같은 달동 주민인 후배의 강력한 주장에 약간 술에 취했던 나는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가서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확실히 특이한 담벼락하며 벚꽃 나무까지 이곳이 확실했다. 나는 고양이가 바라보던 방향으로 시선을 옮겨보았다. 늘 보던 평범한 풍경이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무심코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은 다음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엄마가 만들어 준 콩나물국을 먹고 이번에 찍은 사진을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작업하고 남은 건 어젯밤에 찍은 단 한 장뿐이었는데 그 사진이 뭔가 이상했다. 거리에 떨어져 있는 벚꽃 잎이 묘하게 화살표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엄마, 나 잠깐 나갔다가 올게요.”
“언제 들어 올 거니?”
“글쎄, 늦어도 8시 이전에는 올게.”

어젯밤 사진의 벚꽃 잎은 이미 바람에 날아갔는지 남아 있지 않았지만 나는 화살표 방향으로 시선을 옮겨 보았다.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없는 그런 기분에 다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사진을 살펴보았다. 역시나 홀로 다른 방향으로 생긴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사진이 아닌 그냥 두 눈으로 봤을 때는 별 것 아니었는데 사진으로 찍고 작은 화면에 띄우자 뭔가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몇 시간을 그 의미를 나타내는 것들을 쫓기 시작했다. 고양이의 시선, 벚꽃 잎이 나타낸 화살표, 혼자 다른 방향으로 생긴 그림자, 유모차에 타고 있던 아이가 가리킨 곳 등을 따라서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해가 지고 결국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비둘기 공원 이었다.
더 이상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자 나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 우스웠다. 사실 그런 의미들은 나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었다. 다시 한 번 카메라를 꺼내 오늘 찍었던 사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런데 점차 나중에 찍은 사진일수록 의미를 나타내는 사물을 제외한 다른 풍경들이 흐릿하거나 일그러져 있었다. 이제 나는 두렵기까지 했다. 뭔가 내가 몰라도 되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아닌지 무서웠다. 그때 누군가가 내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기, 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붉은색 후드 티를 입은 사내였다. 후드를 깊게 뒤집어써서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미성년자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기에 라이터를 건넸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길게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고 길게 연기를 내쉬었다.

“오늘 하루 재미 있으셨나요?”
“네?”
“제가 조금만 늦었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렇게 세상의 비밀을 파헤치신 겁니까?”
“세상의 비밀? 다..당신 누구야?”
“나이트 후드 입니다.”
“나이트 후드?”

세상의 비밀? 나이트 후드? 나는 이해하기 힘든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후드 티의 사내는 다시 한 번 길게 담배를 들이마시고 내쉬더니 바로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담배꽁초를 버리고 나에게 다가와 내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후드 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람의 눈은 정보를 전부 뇌에게 전달하지는 않아요. 필요 없는 정보는 알아서 없애버리죠. 그렇기에 평범한 사람들은 세상의 비밀을 나타내는 의미를 읽지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당신의 눈은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있어요. 비록 당신은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로 그 능력을 사용했지만 지금 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당신의 현실의 현실을 볼 수 있겠죠. 그리고 당신은 안타깝게도 이미 늦었어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사내의 얼굴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수많은 별이 떠 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하늘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공원 안에 있던 그네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상은 점차 조금씩 현실의 현실을 나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싫어! 이런 게 현실이라면 싫어, 싫어, 싫어. 아아악~”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오기 시작했다. 내가 본 현실은 너무나도 두려웠다. 나는 두 눈을 감고 머리를 감싼 채 주저앉았다. 후드 티의 사내는 그런 내가 한심한지 혀를 차며 내 얼굴을 들어 올렸다.

“저런~이제는 어쩔 수 없네요. 당신이 살리기 위한 최후의 방법이니 너무 나를 원망하지는 마세요.”


그로부터 일주일 후 나는 대학병원의 병실 침대 위에서 정신을 차렸고 내 왼쪽 눈동자는 아주 철저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엄마는 어쩌다가 그런 일을 당한 거냐고 울면서 물었지만 나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확인한 카메라에는 후드 티의 사내의 뒷모습이 찍힌 사진 한 장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손을 흔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나는 다시 타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다시 후드 티의 사내를 만나는 건 힘든 일이겠지만 만약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정말 간절히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다.

“당신 나이트 후드(Knight hood) 에요? 아니면 나이트 후드(Night hood) 인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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