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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운 스탯은 어떻게 하면 찍을 수 있을까? 6 2010.02.09


오랜 시간을 한국이라는 서버에서 캐릭터를 키우다가 어느날 정신을 차려보니 익숙하면서 굉장히 어색한 캐릭터가 눈 앞에 뛰어다니고 있었다. 정보창을 열어서 스탯과 스킬을 확인해봤지만 어쩌다가 이런 쓸모 없는 캐릭터가 되어 버렸을까? 라는 의문 말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평범하게 게임을 했다면 잘 하지 않는 "고등학교 자퇴" 나 "나의 수능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지" 같은 퀘스트도 완료했고 분명히 성실히 2년 2개월을 나라와 국민을 위해 군복무 했지만 사회 나오면 천대 받는 "아무리 그래도 어차피 넌 공익이잖아" 라는 퀘스트도 완료해 있었다. 이래서는 만렙은 커녕 앞으로 새로 나올 퀘스트는 뒷전으로 한 채 친구들처럼 "공무원 시험 준비합니다" 퀘스트에 매진할 거 같은 불안함이 가득했다. 게다가 내 전직 랭크는 "고졸" 에서 멈춰 있었기에 당장 "대졸" 랭크로 업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장난 아니었다. 요즘 다들 대졸 랭크는 찍잖아. 나만 안 하면 이상하잖아.

그때 마침 ~호주라는 서버에 오셔서 새롭게 시작하세요~ 라는 이벤트가 눈에 들어왔고 이미 호주라는 서버로 넘어간 친동생님의 "지원 가능함" 라는 말과 부모님은 아무것도 안하는데 괜히 내가 눈치 보여서 피하고 싶은 분위기 등 여러가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발생하며 호주라는 서버에서 새롭게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모든 건 결국 내가 결정한 것이고 친동생이나 부모님을 원망한다 식으로 해석하면 많이 곤란하다.)

대망의 2008년 5월 호주라는 서버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시작했다. 아기마냥 영어라는 언어도 새로 습득해야 했고 모든 게 낯설고 신기했다. 물론 쉽지 않는 일이었다. 한국이라는 서버에 두고 온 많은 것들이 그리웠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두려움이 나를 괴롭혔지만 또 한편으로는 재밌었다. 나는 아예 호주라는 서버에 정착하기 위해 "영주권" 퀘스트에 돌입하고 퀘스트 완료에 도움이 되는 요리사라는 직업을 갖기 위해서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친동생과 부모님의 아낌 없는 지원으로 정말 어렵게 게임하는 분들 보다 편하게 퀘스트를 해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퀘스트 완료 조건의 변화가 시작 되었다. 요리사 학교 입학하려면 아이엘츠 5.0 점수를 받아야 하던 게 5.5 로 상향 조정 되었다. 뭐 0.5? 까잇거 해주지. 라며 어떻게 무사통과 했다. 그런데! 또 완료 조건이 변해서 졸업 후 영주권 신청시 아이엘츠 점수 6.0 받아야 한다고 했다. 어라? 힘들겠네. 그래도 열심히 하면 될 거야. 라고 생각하며 우선 열심히 견습 요리사 경험치나 모으자. 라며 어떻게 성실하게 살았다. 그런데! 결국 어제 아침 요리사는 퀘스트 완료에 도움이 되는 보너스 점수를 삭제했습니다. 라고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세부사항은 4월 달에 발표나요. 지만 학교의 수많은 견습 요리사들이 혼란에 빠졌다.

물론 순수하게 요리가 좋아서 견습 요리사 코스를 받아오던 사람들의 혼란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나와 같이 요리사도 되면서 영주권 퀘스트도 완료하자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정말 많이들 힘이 빠져 버렸다. 이래저래 알아보고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해봤지만 결국은 다시 한국 서버에서 해야 할 거 같다는 결론이 지배적이었다. 2년 간의 그리고 남은 1년 과 그동안 투자한 돈과 시간은 결국 한국이라는 서버에서는 별로 유망한 직업도 아닌 요리사라는 직업을 습득한 걸로 끝이 날 거 같다.

도대체 난 왜 이렇게 운이 나쁜 걸까? 처음 호주에 왔을 때는 딴 생각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나도 이 나라에서 나를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나라에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결국은 다시 한국 돌아 가란다. 부모님한테는 괜찮을 거다. 걱정하지 마라. 방법이 있겠지 정도의 말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욕 밖에 안 나오고 허탈하기만 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고민해봤지만 참 막막하다. 프렌치 요리를 배운 요리사의 취직율은 과연 어느정도 될까? 영주권을 따면 애인님과 결혼해야지라고 했던 아는 형은 한국에서 요리사 해봤자 얼마나 벌겠어. 그보다 취직이나 될까? 라더니 에휴~ 혼자 살아야지. 결혼은 무슨... 이라며 절망에 빠졌고 나 또한 나이는 점점 차고 혼자 살아야 하는 건가? 싶었다.

참 사는 게 힘들다. 한 편으로는 화가 막 나고 한 편으로는 담담하다. 살면서 느끼는 건데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는 거 같다. 그러니까 도대체 행운 스탯은 어떻게 하면 찍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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